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까?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까?

20260510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까?

마태복음 8:1-4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제가 병원에서 원목으로 사역할 때에 많은 환우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것은 빨리 회복해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증세가 심해져 오래 입원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결국 생을 마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퇴원해도 좋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복음을 들은 것 마냥 기뻐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들떠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의사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병원에서 생활하시듯 환자처럼 사셔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병을 얻게 된 것은 일상에서 무너진 습관과 잘못된 생활 때문인데, 병원에서는 치료와 대처가 가능하고 환자 자신도 치료에 전적으로 몰입하기 때문에 치유가 가능하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다시 병이 재발되어 병원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수많은 무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다른 권위가 있다고 크게 놀랐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산 위에서 평생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예수님은 특정한 누군가만을 위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당연히 제자들과 무리들도 산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때로 변화산 위의 베드로처럼 산 위에서 초막을 짓고 예수님과 살겠노라고 고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산 위에 머무는 삶이 아닙니다. 성전에만 머무는 삶이 아닌 일상을 살아내는 거룩함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듣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놀라운 예배를 드렸다고 해서, 그곳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산 위에 있는 것이 아닌, 온 세상 열방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자마자 한 나병환자가 절하며 간구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 상황은 보통 상황이 아닙니다. 나병환자는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철저히 격리 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감히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모든 이들이 부정해질 뿐만 아니라 전염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수많은 무리 앞에 자신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당장 쫓겨나거나 돌을 맞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게다가 그에게 손을 대십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문화에서 이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병에 전염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부정해져서 당장 격리가 되어야 하고, 산에서 내려오신 이후 바로 은둔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나병환자를 만지십니다. 그에게 깨끗함을 받으라 명하시고 그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만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닌, 불치병도 고치시는 놀라운 권능의 구원자이심을 알리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모세보다 크고, 광야의 불기둥과 구름기둥보다 더 큰 능력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눈 먼 자를 눈 뜨게 하시며, 듣지 못하는 자들을 듣게 하시며, 포로된 자들을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라는 메시야의 정체성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랐고, 특별히 오늘 깨끗함을 받은 나병환자는 더욱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제사장에게 보내십니다. 제사장들에게 깨끗함을 받은 사실을 보이라고 하시며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입증하라고 하십니다. 모세보다 크신 예수님은 다시 그를 제사장들과 모세의 율법 아래로 보내십니다. 당장 나를 따르라고 하실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다시 그를 있던 곳을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지만, 같은 형식으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깨끗함을 얻은 나병환자는 새 삶을 얻어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 것 같지만, 예수님은 그를 다시 그가 있던 곳으로 보내십니다. 왜 예수님은 그와 동행하지 않으시고 그를 다시 그의 가정과 공동체로 보내셨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변화된 삶이란 은혜의 선물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노라 선포하며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목회자가 되어야할 것 같은 열정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사명과 목적의 변화이지 삶의 터전과 직업 또는 역할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히 그의 병을 고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격리 되었던 그의 집으로, 공동체로 돌아가게 하심으로 그의 사회적 관계를 치유하십니다. 그의 병든 마음을 다시 돌볼 수 있는 곳으로 보내십니다. 다시 공동체가 그를 용납하고 그가 자신의 삶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 수 있는 곳으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압도되어, 하나님이 내 삶에 역사하시는 놀라운 능력으로 인해 성경 안의 선지자들과 제자들처럼 내 삶을 모두 바꿔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전격적인 부르심을 입은 자들도 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이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나병환자처럼 자신을 격리했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변화된 삶을 살도록 보내시기도 하십니다. 자신이 어떻게 치유받았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삶으로 증명하게 하시는 가장 친근한 곳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산 아래로 내려오셔서 우리가 거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모든 삶을 함께 해야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땅은 변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전 안에서만 거룩한 삶이 아닙니다. 산 위에서만 놀라운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 곁에 있어 예수님이 느껴져야만 복된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전 밖에서도, 산 아래에서도, 예수님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자신이 거한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장, 학교, 집과 거리와 들판에서도 우리는 주의 거룩한 제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의 말씀은 우리의 삶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적용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가 밟은 땅에서 하나님을 선포할 때, 예수의 이름을 선포할 때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산 아래로 내려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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