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을 만지시니

나의 손을 만지시니

20260614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나의 손을 만지시니

마태복음 8:14-17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난감하고 어려운 것은 아이들이 갑자기 아픈 것입니다. 그리고 밤에 더 증세가 심해져서 응급실을 가야하거나, 밤새 기다렸다가 아침에 병원이 열자마자 달려가는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일주일 한 번씩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집 앞에 있던 소아과는 아이들로 인해 매번 한 시간 이상씩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병원은 세련되고 깔끔하고 친절하지도 않았는데 매일 붐볐습니다. 동네에 소아과가 없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사람이 많으니 아픈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때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병원에 사람이 많았던 이유는 의사 선생님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아이들의 말을 잘 듣고 부모님들의 말을 잘 들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료 시간도 길어지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이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함께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영화 우아한 세계의 주인공은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보내고 홀로 지내는데 갑자기 병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병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의사에게 분노하게 되고 하소연을 하게 되죠. 자신의 병에 대해 측은지심은 말할 것도 없고 그저 기계처럼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난 것입니다. 물론 의사 선생님도 이해가 됩니다. 모든 사람을 감정적으로 대할 순 없으니, 그렇게 된 것이겠죠. 하지만, 고통과 신음 속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라도 붙잡으려 합니다. 자신의 병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어떻게 해야 낫게 되는지, 몸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 또는 공감을 얻고 싶어합니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어서 몸이 아프면 마음이 상하게 되고, 마음이 상하면 몸도 아프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치유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치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메시야가 온 목적을 선포하십니다. 누가복음 4장 19~20절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고치십니다. 이것은 모두 죄악과 범죄함으로 무너진 이 땅을 회복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완전하고 온전하신 세상을 회복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어둠의 권세에 눌린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해인 것이죠.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회복케 하시는 사역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갇힌 자들을 자유케 하시고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베드로의 집에 가신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실 때 거하셨던 곳이 베드로의 집이었을 겁니다. 그곳에서 주로 여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고 수종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입니다. 열병이라 하면 고열이 나서 앓아 눕는 증상인데,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이었을 것입니다. 심각하면 생명이 위태할 수도 있는 병이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병든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셨습니다. 만지시면 안 됩니다. 이 열병은 전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고, 부정한 자를 만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의 손을 만지셨습니다. 능력의 예수님은 오늘 본문 이전에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실 때, 그저 말씀으로만 그를 고치셨습니다. 그렇게 해도 될 것입니다. 그녀가 낫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그녀를 만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맹인의 눈에 침을 바르고, 나병환자를 만지시고, 나사로의 무덤에 찾아가고, 아이의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굳이 그들을 만지셨을까요? 예수님은 단순히 병을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 회복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한 병의 치료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일어섰습니다. 그녀는 의원 되신 예수님만 만난 것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녀는 다시 예수님께 수종을 듭니다. 이전에 했던 대로 아니 이전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주를 섬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문제를 들고 예수님 앞으로 갑니다. 마음의 아픔과 질병을 가지고 가기도 하고, 재정과 관계와 영혼의 문제를 들고 갑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해결 받기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문제만 해결 받았나요? 혹시 기도하는 가운데, 울부짖는 가운데 예수님의 만지심을 느끼지는 못하셨나요? 내 손을 잡아주시는 주님을 느끼지는 못하셨나요? 내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을 느끼지는 못하셨나요?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병을 고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안으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을 수종들었다고 해서 이것이 마치 다시 고생하고 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날 살리신 예수님의 은혜에 힘입어 다시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함께 16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옵니다. 예수님은 쉴 새도 없이 다시 귀신 들린 자와 병든 자를 고치십니다. 아마도 스치듯이 사람들을 만나시지 않고,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환부를 안으시는 예수님이셨을 겁니다. 본문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집은 귀신 들린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로 붐볐을 것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의 예수님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도 피곤함과 지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사역은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이고,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진 양들을 품으시는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이 비단 육체적인 피로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함께 17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거룩하고 존귀한 분이신 예수님께서 죄악으로 얼룩진 이 땅에 오셨기에 선하신 예수님은 이 땅의 죄악을 경험하셔야 하고 느끼셔야 하고 만지셔야 했습니다. 귀신 들린 자들을 보시며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귀신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을 보셔야 했으며, 무너진 생태계와 죄의 저주로 인해 무너진 피조세계 속에 생긴 질병들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저 멀리서 귀신들을 내쫓고 병든 자를 병실에 가두는 분이 아니십니다. 직접 그들을 만지시고 그들의 무게를 느끼시고, 참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고통을 온몸과 영혼으로 다 받아내시며 견디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피를 흘려주셨기에 우리의 죄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기 전, 그분의 공생애 삶 속에서도 이미 매일 밤 작은 십자가를 지고 계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의 무게를, 병든 자의 고통을, 시기와 비난과 조롱을 하는 자들의 죄악을 영혼으로 느끼시고 감당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모든 것을 그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며 말씀으로만 해결하시는 분이셨다면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악 가운데 있는, 고통 가운데 있는, 무지함 속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고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베드로의 집에 계십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고 여전히 이전 삶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제자들의 짐을 지십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과 죄악됨을 함께 짊어지십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놀라운 능력의 예수님이시지만, 또한 우리의 놀라운 위로자이자 친구이자 아버지 되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분 앞에 우리의 치부를 내어놓고, 환부를 내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무너진 모든 영역들을 고백하고 수치와 부끄러움 가운데에서도 오늘도 이렇게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멍에를 끊으시지만, 우리의 아픔도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베드로의 장모처럼 우리도 어쩌면 마음의 열병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손을 만져주실 것입니다. 어서 빨리 일어나라고 말씀하시기 보다, 우리의 손을 만지시며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힘입어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그것을 기대하며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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