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7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까?
마태복음 8:5-13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몇 년 전에 자신의 출생에 대한 풍자로 ‘수저’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냐에 따라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뉠 수 있다고 하는데, 각자 자신이 어떤 수저인지 서로 논쟁하곤 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흙수저이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산다고 말하기도 하였고, 자신은 금수저는 아니지만 은수저 정도는 되니 감사하며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출생은 본인이 정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운명처럼 이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도 수저 논쟁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이 있다고 말하고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을 뜻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기에 영적 금수저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오늘의 본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셔서 한 백부장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 지역의 큰 도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기도 하신 곳입니다. 당시에 예루살렘 지역은 로마 총독의 지배를 받았다면, 갈릴리 지역은 헤롯 안디바의 관할 지역이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유대인들을 통치하기 위해 군인들을 고용하였는데, 아마도 백부장은 수리아인 또는 헬라인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것은 백부장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음을 알게 하는 정보입니다. 그에게 하인이 있는데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당시 하인은 노예를 뜻합니다. 사고 팔 수 있는 존재였기에 당시 병들고 약한 노예들은 버려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중풍병이 걸려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백부장은 그를 위해 예수님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일까요? 7절을 읽겠습니다. 사실 이 본문은 헬라어 그대로를 번역하게 되면 ‘내가 가서 고쳐 줄까?’ 에 가깝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집에 가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은 매우 하찮은 존재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의 집에 간다는 것은 당시 문화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하인을 고치기 위해 집으로 가겠다고 백부장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예수님에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굳이 자신의 집에 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합니다. 유대인인 예수님이 이방인인 자신의 집에 오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답변하는 것일 수 있겠으나, 백부장은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며, 상관의 능력은 절대적인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자신의 상관처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 백부장을 온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게다가 오히려 믿지 않는 유대인들,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동 서의 수많은 민족들이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약의 하나님의 구원이 언약 밖에 있던 이방인에게 임하게 된 것이죠. 어찌보면 이방인인 백부장은 율법의 혈통으로 보면 금수저나 은수저도 아닌 흙수저 같은 인생일텐데, 믿음 때문에 그의 인생이 금수저가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자신의 구원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출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출생으로 자신의 인생이 정해지는 것은 세상의 법칙입니다. 세상의 법칙은 부를 쌓고 명성을 쌓는 것이 성공이며, 좋은 유산을 남겨주는 것이 성공처럼 여겨집니다. 자신이 쌓은 부를 후대가 이어가고, 지속적인 금수저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인생역전을 꿈꾸지만,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포자기하는 시대이며, 많은 젊은이들은 사회를 향한 울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두운 곳에서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젊은이들은 공정과 형평성을 외치고, 분노의 감정들을 지닌 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회는 왜 이런 수저 논쟁을 하게 된 것일까요? 출생과 출신은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 이런 논쟁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사는 나라입니다. 백부장은 혈통으로나 율법적으로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주이시며, 병든 자를 고치는 분이시며,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능력의 주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의 믿음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누가복음 7장 1~10절에 의하면 그는 유대인을 사랑하며 유대인들을 위하여 회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도 유대인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죽어가는 하인을 위해 간구를 할 만큼 자비로운 사람이었으며, 예수님 앞에 자신의 권위와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러한 믿음과 성품을 보시고 그를 하나님 나라에 함께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제가 군대를 전역하고 필리핀에 유학을 잠시 다녀온 시간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국인 선교사님이 제게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곳에서는 목사와 장로님 아들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민다.’ 농담스럽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당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출신이 중요한가? 하나님 나라에도 목사와 장로가 중요한가?’ 만약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죽도록 노력하고 고생해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목사와 장로의 자녀라는 영적 배경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이 바로 그 영적 기득권에 취해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영적 금수저인 줄 착각하다가, 정작 오늘 현재의 믿음이 없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으로 받아주셨고, 그분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우선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의 소개로 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예수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특별한 누군가를 위함이 아닙니다. 바로 나를 위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이 말하는 수저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출생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절대 자신은 내쳐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본 자손들처럼 바깥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과거의 영광이 아닙니다. 과거에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지금 내 삶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고 방종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와 함께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교제하고 동행하기 원하십니다.
백부장의 고백처럼 우리는 매일 주 앞에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주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능력이신지 선포해야 합니다. 과거에 내가 얼마나 뜨겁게 예수님을 만났는가, 내 직분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늘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자리에서 백부장처럼 주님의 말씀의 권세를 선포하고 그 명령에 복종하는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진짜 하나님 나라의 금수저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나에게 이런 고백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혹시 나의 믿음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이루어놓은 업적으로 멈춘 것은 아닌지, 다시 오늘의 나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부장의 고백처럼 나의 고백이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게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선포하고 노래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