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져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9-13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철강 기업인 포스코의 심장부, 용광로 공장에는 철강 공학의 아주 놀라운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습니다. 고로에서 갓 뽑아낸 순도 100%의 깨끗한 쇳물인 ‘용선’만 가지고 철을 만들면, 겉보기에는 완벽할지 몰라도 충격을 받으면 툭 하고 쉽게 부러지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집니다. 그래서 포스코의 엔지니어들은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강철을 제련하는 ‘전로 제강 공정’ 단계에서, 반드시 거대한 크레인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이것을 먼저 집어넣습니다. 바로 공사장이나 폐차장 등지에서 시커멓게 녹슬고 구부러져 버려진 ‘고철 스크랩(Scrap)’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최고급 강철을 만들 때 방해가 될 것 같은 이 지저분한 고철 뭉치들이 뜨거운 쇳물 속으로 들어가 함께 녹아내릴 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고철 속에 녹아 있던 탄소와 미세 성분들이 순수한 쇳물과 기가 막힌 결합을 이루면서, 비로소 초고층 빌딩의 뼈대가 되고 우주선을 만드는, 그 어떤 충격도 흡수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강철, ‘고장력 강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공동체 또는 교회는 반드시 모범적이고 믿음이 좋은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을 것이란 기대와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어릴적 제 친구는 자신은 지은 죄가 많아서 그리고 앞으로 죄를 많이 지을 것 같아서 교회를 못 가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주님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는 흠없고 맑은 의인들만 있는 곳일까요? 오늘 예수님은 뜻밖의 사람을 부르십니다. 계시던 가버나움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명하십니다. 세관에 앉아 있었다는 말은 그게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때문에 마태는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혐오하고 죄인으로 여기던 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유대인 동족들 중에 세리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로마가 징수하는 세금 외에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추가로 세금을 징수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민족을 팔아먹은 자들로 여기며 그들을 저주하고 상종 못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그 집에 온 사람들은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11절의 바리새인들은 그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마태의 집은 정말 오랫만에 동종 계열의 세리와 당시 천대를 받던 율법에서 어긋난 자들로 여겨지는 죄인들이 아닌 일반 유대인들을 손님으로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세리와 죄인들은 천대 받는 사람들이었고, 당시의 율법과 문화는 그들을 같은 민족으로 여길 수 없는 죄인이라 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으니, 이것은 매우 놀라운 장면인 것입니다. 그들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들과 어울린다는 뜻이고, 내가 그들과 같은 부류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질타는 바로 ‘너희도 같은 부류냐?’ 라고 하는 비난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십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함께 12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의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닌 생명을 구원하는 구세주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고 놀라운 능력의 예수님이라고 할지라도 못고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병든 자임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처럼 건강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쓸 데가 있다고 하십니다. 사실 의사에게 가장 난감한 사람은 자신은 건강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며, 더 이상 치료할 것도 고칠 병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증세와 고통을 말해야 그에 맞는 진단과 치료가 진행되는데, 전혀 손 쓸 여력이 없는 것이죠.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손가락질하며 자신들은 저들과 다르다고 스스로 위안했습니다. 자신은 병든 곳도 없고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치유 받을 수도 구원 받을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들은 의인이라고 생각하여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자들을 정죄하고 구별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아무리 의로운 행위와 율법을 지켰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율법이 말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중요한 본질을 몰랐기에 예수님은 그들의 현주소를 말씀하십니다. 함께 13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 말씀은 호세아 6:6절의 말씀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종교 행위는 남아 있었으나, 하나님을 잃어버린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정의 그리고 긍휼은 전혀 없고, 자신들의 의로움만을 주장하며 서서히 파멸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호세아 선지자는 외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시지 않고 긍휼을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입니다!’ 진실한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고, 무지했기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뜻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정중히 권유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 자녀나 친구들에게 ‘공부 좀 더 해라!’ 라고 핀잔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능한 자이며, 지식이 많고 훌륭한 연구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공부를 더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닌 죄인을 구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여겼습니다. 의인이 되기 위해 수많은 율법과 제사들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의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의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과 친밀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구하러 왔다. 다시 말해, 너희가 죄를 고백하고 겸손히 엎드리면 너희에게 구원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원하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사랑이고 그분의 사명이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죠. 당연히 그 사랑 안에는 바리새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죄가 없다 하는 이를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구원은 회개와 죄 사함 이후에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큰 죄인으로 여겨지는 마태의 집에 거하셔서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같은 부류다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이 되셨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마태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기록하는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최고급 강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도 100%의 깨끗한 쇳물이 필요할 것 같지만, 그 안에 고철을 넣어 오히려 더 강한 강철을 만드는 것처럼, 예수님은 고철 덩어리로 여겨지는 부식되고 부패한 자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습니다. 의인들의 집합체가 아닌 죄인들의 집합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안에서 지어져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안에 녹아져내려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어떠함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내와 긍휼로 새로운 존재로, 주의 자녀로, 의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며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주 앞에 엎드리는 자를 반드시 안으시고 자신 안에 거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이곳에서 예배하고 주의 성전이 되고 있음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함께 지어져 완성될 그 날을 고대하고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오늘 이 자리에 예배자로 오시면서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자랑하기 위해 오신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결코 주 앞에 자랑할 것이 없지만, 오직 한 가지 나를 위해 죽으신, 나를 씻으시고 구원하신 주의 이름을 가지고 주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며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죄인된 나를 초청하시고 나와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나를 부르신,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주를 찬양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공동체가 최고급 강철이 되도록 인도하시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 강력한 주의 군대로 삼으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