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찾으십니다
마태복음 8:28-34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제가 드라마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최근에 한 드라마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구하기 위해 극한의 상황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아버지는 최고의 특수부대 요원이었으나, 홀로 남겨진 딸을 위해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딸의 생사를 알 수 없고 행방불명이 되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딸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화려한 액션과 정의구현이라는 부분에서 매우 마음을 시원케하는 드라마인데, 저는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혹시 갱년기인가 싶었는데, 가족끼리 같이 본 감동적인 영화에서는 전혀 미동치 않은 것으로 보아 드라마에서 주는 내용과 대사들이 저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저는 왜 울었을까요?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에서 베드로의 장모와 귀신 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다라 지방에 가셨다고 말합니다. 가다라 지방은 당시 유대지역이 아닌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데가볼리의 한 도시였습니다. 데가볼리는 10개의 도시라는 뜻인데, 그 중의 한 도시인 것이죠. 예수님은 이곳에 왜 오셨을까요? 이전 본문을 살펴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곳에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지진과 해일과도 같은 큰 놀을 만나 죽음의 위협을 거쳐 이곳에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보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왜 이곳에 오셨을까요? 오늘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 둘을 만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8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런데 그 둘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무덤 사이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그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서야 그 무덤가를 아무도 지나지 않는 그 길을 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소리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이 두 사람은 귀신 들렸기 때문에 저들의 이성과 판단으로 소리 지르며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귀신들의 외침이죠. 그들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의 권위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 앞에 자신들이 이미 어떻게 될지 알게 된 것입니다. 어둠의 권세는 반드시 주님 앞에 굴복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그 어떤 권세도, 능력도 행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십니다.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이름이 우리의 능력이심을 신뢰하며 선포하십시오. 그 어떤 것도 예수의 이름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안에 있는 근심이나 걱정과 염려가 있다면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주님의 이름을 외치십시오. 오직 주의 이름만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시려고 오셨나고 묻습니다. 이 때는 어떤 때입니까? 모든 원수와 거짓 선지자와 악한 모든 것들이 마지막 심판 날에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귀신들도 이 때를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결국 무저갱에 갇히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는 것이죠.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지금 오셨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는 하나님의 자녀된 백성들이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 영원한 사귐에 거하는 날입니다. 제자들은 모르고, 사람들은 모를 수 있지만, 원수된 귀신들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승리하셨고 마침내 완성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죠.
귀신들은 자신들이 예수 앞에 심판을 받을 것을 알고 돼지 떼들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이 본문과 평행본문인 누가복음에서는 자신들을 무저갱에 보내지 말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심판이 있기까지 갇히는 감옥을 뜻하는 것인데, 지금껏 가다라 지방에서 왕노릇 하였던 자신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라’ 명령하시며 돼지 떼들에게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귀신 들린 돼지떼들은 비탈을 달려 바로 바다에 몰사하고 맙니다. 이 때 두 사람에게 들어가 귀신들이 작은 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 13절에서는 이 때 돼지 떼가 약 2천 마리이며, 귀신들은 자신들을 군대라고 칭하였다고 하는데, 당시 군대(레기온)는 약 6,000명의 군사의 집합체였습니다.
두 사람에게 들어갔던 귀신들은 바로 매우 큰 군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제어할 수 없었고, 그들은 그 도시의 통치자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두 사람을 찾아 거친 풍랑을 헤치고 그곳에 간 것입니다. 귀신은 두 사람을 도구로 사용한 것이고, 파멸과 죽음으로 이끄는 존재입니다. 때문에 그들이 살았던 곳도 무덤이었던 것이고, 돼지 떼에게 들어가자마자 바다로 달려가 몰사한 것도 그들의 결국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도시와 그 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거친 바다와 바람을 헤치고 군대 귀신들을 물리치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신 것입니다. 배 위에서 제자들은 죽음을 경험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에게 원망하듯이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어가는 그 두 사람을 위해 험한 길을 찾아가셨습니다.
군대 귀신 들렸던 그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함께 마가복음 5장 15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 두 사람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아무도 해결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두 사람, 귀신 들려 죽어가는 그 두 사람이 예수님 앞에 온전히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지역과 도시에 그 두 사람은 매우 유명한 사람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군대 귀신들을 말씀으로 물러가게 하시고 그 두 사람을 온전케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두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기로 결정합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을 어떻게 하였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함께 마가복음 5장 19-20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행하신 큰 일을 알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행하신 주님의 놀라운 일을 전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아버지의 장사를 마치고 주를 따르겠다고 하던 제자에게는 지금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두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이동 경로를 따라 배에 타는 대신,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 남겨진 파송된 제자로 살아가라 하십니다. 가다라 지방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몰사하였기 때문에 수십억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저들은 더 이상 피해 또는 분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곳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을 찾아오셨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이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지만 이 두 사람을 통해 복음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후에 예수님은 다시 데가볼리 지역을 방문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말씀을 듣기 위해, 병고침을 위해 나아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칠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두 사람을 고치는 것을 넘어 이 도시의 구원을 위해 사명자를 심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 찾아오셔서, 그곳이 아무리 어둡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거친 풍랑과 바다를 넘어 오십니다. 그리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큰 군대의 귀신들을 물리치십니다. ‘예수님이라도 이곳엔 오지 못할거야. 내가 있는 곳은 도저히 예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야. 오신다고 해도 나의 이 커다란 문제는 해결할 수 없어.’ 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향해 어디든 가십니다 .그곳이 무덤이든, 광야든 사랑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그 사랑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도 오셨습니다. 오늘 어떠한 문제와 아픔 가운데 이곳에 오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예수님이 찾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가다라의 두 귀신 들린 자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의 삶에 찾아오십니다. 무너진 삶을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우십니다.
우리 잠시 눈을 감고 나의 삶을 돌아봅시다. 도저히 안된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있었나요? 도저히 이 부분은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하신 영역들이 있었나요? 분명히 오십니다. 아무리 높은 산과 깊은 바다가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만지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한 놀라운 계획을 말씀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잠시 주님 앞에 머물러 나를 찾아오신, 나를 찾아오실 주님을 찬양합시다. 기대하며 주님을 찾읍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