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지어져가는교회 주일설교_20260712
침상을 함께 메고
마태복음 9:1-8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저는 본래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발표하다가 울기도 하였고, 선생님이 내 번호를 부르면 어떻게 하나 매순간마다 긴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부끄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내성적인 모습은 계속 되었고, 친구가 없이는 교회를 다니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중등부 회장을 하였고 키도 크고 앞에서 기타를 치던 멋진 친구가 제게 문득 앞에서 특송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정말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친구 때문에 거의 매주 앞에 나가서 특송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제가 어떻게 사람들 앞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 친구가 없었더라면 결코 사람들 앞에 나가 노래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만남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시간을 보냈느냐가 인생의 노선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있습니다. 귀신 들렸던 자가 온전하여지고, 병들었던 자가 치유가 되고, 공동체 뿐만 아니라 가족을 잃었던 자들이 예수를 만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보기 위해 몰려들고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역전을 꿈꾸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데가볼리 지역에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을 온전케 하시고 다시 배를 타고 예수님의 거점이자 본 동네인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십니다. 데가볼리 지역을 떠나실 때도 귀신 들린 자들과 병든 자를 고치셨기 때문에 어김 없이 예수님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각자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몰려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줄곧 베드로의 집에 머무셨기에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집 앞에 모였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5장에서는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까지 총출동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집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병든 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2절에 나오는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마비의 증상을 가지고 있는 자였기에 그를 침상째 들고 온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서는 이 사람들이 네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예수님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를 내렸습니다. 이 네 사람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당시 이스라엘의 집은 현무암 돌벽 위에 나무 기둥을 촘촘히 걸치고 그 위를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 덤불 등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진흙이나 점토를 두껍게 바르고 롤러로 밀어 단단하게 굳혀서 비가 새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서늘한 저녁이 되면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거나 잠을 자기도 하는 또다른 생활 공간이었기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매고 온 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사람들이 많음을 보고 과감히 옥상에 올라가 지붕에 구멍을 파고 침상째로 내린 것입니다. 사실 이 행위는 재정적 손실과 불편함을 일으키는 행위였습니다. 당연히 집은 파손되었고 집 내부로 잔해들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무리한 도전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번째 그들에게는 예수님은 반드시 이 중풍병자를 고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닙니다. 근거와 확신을 가졌을 때 오는 것이 믿음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재정적 손실과 책임도 마다하지 않고 이 도전을 감행한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그들은 중풍병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그들이 어디서부터 이 중풍병자를 매고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를 옮기기 위해 호흡을 맞추고 심혈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이죠. 그에 대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라고 하시며 그의 병 뿐만 아니라 죄사함을 명하십니다. 작은 자야 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테크논’ 입니다. 이 단어는 부모가 자신이 낳은 친자식을 부를 때 쓰는 단어입니다. ‘내 아이야’ 라고 부르신 것이죠. ‘내 아이야 이제 안심하라. 네가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네 사람의 믿음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던 그 사람의 삶을 바꾸게 하였습니다. 당시 병든 자들은 그들의 죄값을 받고 있다는 사회적 통념 가운데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병의 나음이 아닌 죄사함을 말씀하십니다. 그곳에 있는 서기관들은 이에 대해 오직 하나님만 가능한 일을 네가 어찌하느냐고 신성 모독을 주장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단순히 병을 고치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함임을 말씀하십니다. 서기관들은 중풍병자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이 믿는 율법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의’만을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정한 자, 죄로 인해 병든 자라는 인식 속에 있는 한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자가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일어나 걷는 것 이상으로 죄 사함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힘이 아닌 네 사람에게 들려 왔으나, 그는 이제 스스로 침상을 들고 걸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는 이제 더 이상 마비와 따가운 시선 속에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를 데려온 네 사람의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자녀 삼으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네 사람의 믿음이 중풍병자가 새로운 삶을 얻게 하는 출발이 되었습니다. 중풍병자는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 그의 삶이 변화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온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비된 사람들이죠. 그들은 몸이 마비되고, 감각이 마비되고, 영적인 기능들이 마비되기도 하며, 사회적 관계도 마비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전히 예수가 소망이시고 구원이심을 들었으나, 나아가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나의 구원이 반드시 나홀로의 믿음만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헌신하는 누군가를 통해 내가 예수님께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좋은 친구를 만나 내성적이고 자신감 없는 사람에서 사람들 앞에 서서 찬양하는 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는 저를 억지로 끌다시피 하여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은혜였습니다. 마비되었던 제가 움직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마비된 영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앞에 있으나 자신들의 생각에 갇힌 서기관들처럼 영적인 마비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를 견인하고 인도하는 좋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홀로 완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입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관계, 믿음의 공동체가 있을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현재 중풍병자와 같은 상태입니까? 중풍병자를 인도한 네 사람과 같은 상태입니까? 혹은 서기관들과 같은 상태는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지만 마비된 영역이 있어 주님 앞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시라면 나를 견인하는 믿음의 친구들이 있기를 간구합시다. 나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자들이 내게 있기를 주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네 사람과 같은 상태라면, 하나님, 제게 믿음의 눈을 주셔서 제가 도와야할 사람들을 보게 하시고 그들을 침상째로 옮길만한 사랑과 용기를 주세요. 지붕을 파고 내릴 수 있는 담대함을 주세요. 재정적 손실과 책임을 감당할 만한 믿음 주세요 라고 기도합시다. 또는 말씀을 들어도 예배 가운데 있어도 전혀 미동하지 않는 서기관과 같은 상황이라면 ‘하나님, 제 안의 악한 생각을 물리치시고 주를 인정하고 깨어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예배에 주님이 임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주 앞에 나아갑시다. 쓰러진 자를 일으키고, 내 손을 잡아 일으키는 동료의 손을 잡고 주 앞으로 나아갑시다.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