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넘어 순종으로

기적을 넘어 순종으로

20260816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기적을 넘어 순종으로

마태복음 9:32-34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최근 제가 좋아하는 한 운동선수가 해외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이 선수는 수년 동안 국내 리그에서 정상급 활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수와 같은 기량의 이전의 선수들의 성공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일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전만으로도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당 선수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논란은 이 선수가 해외 리그에서 직접 경기를 뛰면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게 되면 그칠 것 같습니다. 같은 사건일지라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데이터는 같은데 평가 기준이 다르고 예상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색안경을 끼고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합니다. 때문에 그들이 가져가는 결과도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5~7장까지의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이어 8~9장의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모습인지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사역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낫게 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며,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며, 수많은 무리들을 먹이셨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증거였습니다. 설령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다 보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본문의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능력만으로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될 것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병든 자를 고치고 눈먼 자가 보게 되고 말 못하는 자가 말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메시아를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기에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오늘 이 본문은 마태복음 8~9장을 요약한 숏츠나 릴스와 같습니다. 짧은 분량으로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되는 것이죠. 33절의 말씀에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좋아요’가 폭발적으로 눌린 것이죠.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고, 성경에서 말했던 예언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켠에는 다른 마음을 품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34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싫어요’를 조용히 누른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그저 귀신의 사역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라 칭하며 귀신을 다스리며 쫓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인데, 엄연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바리새인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경외하고 찬송하는데, 바리새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보지 못하는 맹인들도 예수를 만나기 위해 소리치며 달려가는데, 당시 학식과 견문을 넓힌 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요? ‘좋아요’를 누르지 못할 망정 예수는 귀신이라는 악플을 달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영향력을 인정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받아야할 칭송과 영광을 갑자기 나타난 예수라는 자가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가르침이 무너지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귀신이라고 악플을 달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행위는 경건의 모습을 닮아보이나, 그들의 마음은 어둠과 죄악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시며, 저들의 이면성을 고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능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제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고난,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여 예수님을 증거하는 아름다운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기독교는 바로 증인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경험한 자들이 예수를 삶으로 증거하고 간증으로 증언한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었어야할 죄인들을 살리신,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예수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영적인 눈이 어두워 나는 죄가 없고, 예수의 보혈의 공로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이루어놓은 업적과 결실 위에 서서 자신들을 증거하려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들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현실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능력이 내 범주 안에 없으면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것이죠.

 이런 일은 비단 성경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말씀을 읽습니다. 그러나, 모든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내가 소화하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만 수용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신념에 맞는 것만 내게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성장과 성공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 같은 순전한 믿음을 사용하십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연약하고 사회적으로 격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인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범주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과 다른 귀신의 영역으로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시면서 나는 바리새인과 같은 자는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바라는 은혜는 내가 믿고 원했던 것들이 증명되고 인정받는 것이 아닌지 깊이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큰 은혜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고, 내 생각과 삶의 변화를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오늘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기 전에 수많은 정보들과 나의 생각들 속에 파묻혀 살아왔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변질되고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본래 어긋난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오늘의 예배도 바로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내 안의 더러움과 죄에 속한 물든 마음을 정결케 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가장 귀한 마음은 ‘하나님,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전의 나는 없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겠노라고 날마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나는 매일 죽노라’ 라는 고백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 예배에 나오면서 나의 거룩함과 성실함을 증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면, 오늘의 예배가 더욱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나님, 내 안에 바뀌어야 하는 것은 없습니까? 잘못된 생각이나 습관은 없습니까?’ 라는 자각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나의 모습이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은 아닌지 살펴봅시다. 같은 장소, 같은 사건 안에 여전히 나는 나의 생각과 다른 주님의 말씀과 능력에 악플을 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봅시다. 

  성도 여러분, 기적을 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적 이후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눈앞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적을 보고도 아무런 변화도, 순종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내 마음을 꺾지 않는다면, 그 기적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기적만을 좇아 다니는 구경꾼의 길이 아닙니다. 은혜를 입었다면, 기적을 보았다면, 이제는 내 자랑과 내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나를 복종시키는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판단하는 악플러의 자리가 아니라, 주님의 입술에서 떨어지는 한마디 말씀에 내 삶을 거는 순종의 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고백이 우리의 진짜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잠시 마음을 정돈하고, 주님 앞에 나를 꺾고 순종하기를 다짐하며 잠잠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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