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9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기적 이후, 순종의 길
마태복음 9:27-31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얼마 전, 아내가 병원에 갈 일이 있어 아침 일찍 병원에 데려다주는데, 한 상점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로또 1등 당첨점이라는 큰 글씨가 있는 복권 상점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열심인 사람들을 보면서 놀라움과 동시에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이 되는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복권을 사고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그 열심이 결과를 내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됩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수천억 원대의 대형 복권(파워볼)에 당첨되었던 잭 휘태커(Jack Whittaker)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당첨 순간 세상 모든 부를 다 얻은 것 같았고, 평생 돈 걱정 없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첨 이후 그의 삶은 기적처럼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노리는 수많은 사람의 유혹과 사기, 가족 간의 불화, 유흥과 방탕에 빠진 끝에 사랑하는 손녀를 약물 오남용으로 잃고 말았습니다. 그는 훗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복권 당첨 용지는 내 인생을 축복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망쳐놓은 악마의 편지였습니다. 차라리 당첨되지 않았던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통계적으로도 복권 고액 당첨자들의 70% 이상이 몇 년 안에 파산하거나 알코올 중독, 이혼, 우울증 등 전보다 훨씬 더 피폐한 삶을 산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고민과 해방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많은 이들이 각자의 신들 앞에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을 냅니다. 특별히 입시철이나 연말이 되면 수많은 인파들로 사찰이나 교회 또는 성지라 불리는 곳들이 붐비기도 합니다. 모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나오기에 더 열정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부르짖고 지극정성을 다하게 됩니다. 지극정성을 다했기에 응답을 받았다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의 노력이 무의미했거나 신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열심이었기에 좌절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구원과 죽음은 우리의 열심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이 세상은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되고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 두 맹인은 예수님을 따라가며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앞을 볼 수 없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며 예수님의 인기척을 따라 더듬거리며 최선을 다해 부르짖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두 눈을 뜨고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들로부터 해방되고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혈루병 앓는 여인도, 야이로의 딸도, 중풍병자도, 세리 마태도 모두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목격하였고 자신들과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실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는 이들이 생기고,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병상에서 일어나고 회복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따라오며 소리치는 두 맹인을 즉시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함께 28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십니다. 그리고 맹인들은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모르겠으나, 예수님이 집에 도착해서야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당연히 맹인들의 대답은 ‘주여 그러하오이다.’ 믿음을 선포합니다. 두 맹인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의 믿음과 열심은 이미 예수님의 집에 들어오기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만지시고 너희 믿음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그들의 열심이 예수님을 통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죠.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바라는 것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시며 그들을 얽매이고 있던 사슬과 족쇄를 풀어버리셨습니다. 오늘 이 두 맹인에게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은혜의 해가 선포된 것입니다. 어둠과 멸시 가운데 거하였던 두 사람은 이제 더이상 맹인이 아닌 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30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엄히 경고하셨다고 합니다. 권면이 아닌 경고입니다. 순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물론 이들에게는 복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예수님은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전파되고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은 전파되는 것은 맞지만, 단순히 기적과 표적으로만 예수님이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찾았고 따랐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쫓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줄 한 사람, 예수를 따른 것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 자신들의 가난과 억압으로부터 자유케 하실 다윗의 자손 메시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믿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상을 향한 열심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당시 권세자들과 무리들의 종교적 열심이자 자신들의 헛된 믿음이었습니다. 누구나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크기가 아닌 방향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이 산더러 옮기어 저 산이 되게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자들인 제자들에게 더 큰 믿음을 요구하시기 이전에 헛된 믿음을 고치기 원하셨습니다.
두 맹인은 믿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눈뜸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된 것이라고 여길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산 위에 동네가 숨길 수 없듯이, 복음은 감출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빛이기 때문에 어둠 가운데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그러나, 두 맹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들의 구원을 자랑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열심과 믿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순종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두 맹인은 눈 뜨기 전에는 예수님을 따랐으나, 눈을 뜬 이후는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두 맹인이었던 사람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버리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거듭하여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예수는 따를 수 있으나,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예수님은 따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맹인을 집으로 부르십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그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따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을 위한 수단으로 한정지었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학교만 들어가면, 취직만 되면, 승진을 하면, 결혼을 하면, 집을 사면, 빚을 다 갚으면, 장로만 되면 이라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열심을 고취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르는 삶입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나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만, 정작 그 이후의 삶은 기대했던 것과 판이하게 다른 것처럼 조건적인 열심은 결국 실패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두 맹인들을 단순히 길에서 고치지 않으시고, 집에 불러 엄히 경고하신 것은 그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육적인 눈만을 뜨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정확한 목적과 목표를 가진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조건부 믿음과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래 위에 쌓은 집입니다.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미완성 결론입니다. 눈을 뜬 것이 예수님의 능력과 구원이 아닌, 저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능력과 구원입니다. 황소를 드림보다 진정한 순종을 원하시는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리고 내 말을 듣고 순종하여야 한다.’ 우리는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단순한 해결만을 바라지만, 나의 아버지 되시는 우리 주님은 우리의 삶이 전인격적으로 변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예배에 나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 열심으로 예배하고 내가 드린 예물이 나의 신앙의 크기이니 이에 상응하는 응답을 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예배의 목적입니까? 그렇다면 오늘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시다. 문제 해결보다 제가 먼저 깨닫고 순종해야 하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루었던 믿음의 결과물들보다 주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잠시 마음을 정돈하고, 내가 바란 것보다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시도록 잠잠히 머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