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5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누가 돌을 굴려 주리요
마가복음 16:1-8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배곧으로 이사온지 2개월이 지났습니다. 2개월 사이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집 정돈하는 일과 행정적인 서류절차를 비롯한 예배 장소를 위한 사무실 계약과 인테리어까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사실 모든 것들이 제게는 너무 크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이곳으로 부르셨고 새로운 일들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은 있지만, 너무 버겁고 분주하였습니다. 달려가고 있는데 목적지에 다다르면 막상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이곳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신기합니다. 제가 한 것이 없고 누군가가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먼저 오셔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시고 만지신 것 같습니다. 없던 가구들이 생기고,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요청하기도 전에 고민하던 것들이 순차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신 것이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던 제자들은 도망하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만 해도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종려나무를 흔들며 외치던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빌라도의 군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고 조롱하며 때렸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 외에는 예수님의 시체를 거두는 자가 없었고, 그는 당돌히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하고 자신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큰 돌문은 닫혀졌고, 예수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떠났지만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세 여인,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안식일이 지나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돌아가신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기 위해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모든 이들은 예수님을 떠났지만 이 세 여인은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여인들인 것입니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고, 대제사장을 비롯한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의 승리로 마무리 되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정승의 개가 죽으면 사람이 많이 모여도, 정승이 죽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권력일 때에야 사람들이 기대하고 따르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잘 나가고 힘이 있을 때에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는 내가 힘을 잃고 죽어갈 때 알게 됩니다. 누가 진짜 나의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세 여인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인 것입니다. 패역한 죄인이자 거짓 선지자로 낙인 찍힌 예수님을 장사하러 가고 있으니까요. 이 세 여인의 믿음과 진정성은 오늘 성경의 저자인 마가가 이름을 기록할 정도로 의미 있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에게조차 넘지 못한 큰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누가 돌을 굴려 주리요?’라는 한탄 섞인 질문이었던 것이죠. 당시 유대인의 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든 돌무덤이었고, 입구를 큰 돌로 막았습니다. 짐승이나 도굴꾼으로부터 시신을 보호하고 죽음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당시 돌의 크기는 약 1~2m이며, 두께는 20~30cm로 수백 kg 에서 1~2톤 이상의 무게였습니다. 절대로 한 사람이 움직일 수 없고 여러 명이 힘써 옮겨야 하는 크기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서는 ‘그 돌이 심히 크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만 여전히 그 여인들에게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다면 누군가가 이 돌을 움직이거나 예수님께서 직접 옮기셨겠지만 이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돌문이 열렸습니다. 여인들은 걱정과 염려 속에 달려갔으나 돌문은 옮겨졌고 무덤에는 예수님이 아닌 흰 옷 입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여인들에게 그는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며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가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셨으니 말씀하신 대로 그곳에서 만날 것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여인들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일이니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일으키고 살게 하신 기적을 베푸셨으나, 무덤에 갇히고 이틀이 지난 예수님의 무덤의 돌이 굴려져 있고 다른 이가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예수님을 장사 지내기 위해 향품을 가져간 여인들은 무덤의 돌을 굴릴 것에만 몰두하였으나,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8절의 말씀처럼 여인들은 무서워 도망하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인자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무리들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분이라고 믿어왔으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와 죽음을 해결하시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문제와 고민과 염려와 두려움은 죽음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모든 이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죽음입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모든 문제의 결론은 죽음입니다. 많은 이들이 죽지 못해 산다고 하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큰 돌로 무덤은 가리워졌고 영원한 죽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무덤은 열렸습니다. 죽음은 패배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고,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사단의 가장 큰 무기는 죽음이었습니다. 죽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으나, 결국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사단의 머리는 깨졌고, 더이상 사단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 앞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인들의 믿음은 그 당시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숭고한 믿음이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음의 무덤 안에 있는 예수님을 찾아갔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의 바람은 본질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무덤을 가린 돌은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은 돌을 어떻게 굴려야할지 고민하였지만, 그 고민은 필요 없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사를 하고 사무실을 계약하고 사람들 앞에 시작한다고 말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제가 가는 이 길이 허접해서가 아니라, 준비가 덜 되어서가 아니라, 망할까봐 였습니다. 시작한다고 하고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죽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집과 사무실에 큰 돌로 막힐 것만 같은 부채와 압류와 민원과 재정 또는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모든 것이 막히면 어떻게 하나 였습니다. 결국엔 이렇게 내게 종말이 오면 어떻게 하지가 저의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돌이 제 삶의 여정을 막을 때 전혀 움직일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큰 돌로 인해 모든 것이 막히고 어두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다 해도, 수많은 중보기도자와 후원자가 있다고 해도, 수입처와 공급이 확실하다 해도 인생은 모르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을 걷다가도 수렁에 빠지고 함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무덤에 갇히고 큰 돌로 막힐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죽었던 자들의 에피소드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간증 속에는 그들의 힘이 아닌 크신 능력의 손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큰 돌을 옮기는 역사가 있었음을 듣게 됩니다. 시작하지도 않는다면 그런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는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언덕길을 걸어본 자들이 겪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과 승리의 길을 걸어가시게 하는지 깨닫는 은혜입니다.
함께지어져가는교회는 공사를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지어져가야 합니다. 때론 돌문으로 막히고 장애물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크기와 무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는 바로 하나님의 때입니다. 여인들이 한탄하며 말했던 ‘누가 이 돌을 굴려 주리요?’의 부르짖음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이 돌을 옮겨 주실 것입니다. 단순히 돌을 옮기는 차원이 아닌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잠자던 자가 깨어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무덤 문을 박차고 나갑시다. 여러분 앞을 가로막는 돌의 크기가 어떠하든지, 무게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 시간 함께 이야기 나눠봅시다. 여러분의 삶은 현재 어떻습니까? 혹시 무덤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은 무덤은 아니더라도 죽음과 실패의 두려움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을 가리고 있는, 여러분을 압도하는 큰 돌은 무엇입니까? 함께 나누어 봅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돌을 옮겨 달라고 기도합시다. 주님의 능력 앞에 그 돌이 더 이상 무겁고 큰 돌이 아님을 선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