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6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진정한 금식
마태복음 9:14-17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의 시작은 ‘그 때에’ 로 시작합니다. 그 때는 바로 예수님이 세리였던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 모인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할 때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또한 요한의 제자들에게는 자신의 스승인 요한이 헤롯을 비난하여 감옥에 갇혀 있던 때였기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당시 금식은 대속죄일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또는 자신의 경건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 요한이 잡혀있기 때문에 금식을 하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경건함을 위해 금식을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세리의 집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새벽예배와 수요예배는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들에 의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주님께 올려드리고 주중에 세상 속에서 살다가 다시 주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런 예배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을 하며 피곤한 매일의 삶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주중예배는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예배하는 사람들 중에 더러는 이런 주중예배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믿음이 없다고 단정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처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믿음이 약하고 경건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귐을 위해 예배에 나왔으나, 예배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과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렸고, 얼마나 많은 예물과 시간을 드렸느냐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세상은 거룩하지 않은 곳이라 여기며 교회에서의 경건 생활을 우선시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당연히 믿음의 사람이라면 금식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금식을 해야하는지는 정확히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으니 금식해서는 안되고 슬퍼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이 신랑이신 것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은 신부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예수님의 혼인잔치는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아무도 혼인잔치에서는 금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식하고 슬퍼하며 애통하는 자는 혼인집에서 무례한 자인 것입니다. 만약 혼인잔치에서 금식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신랑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간절히 구하며 애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금식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선포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들고 갇힌 자들을 해방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포로된 자들을 자유케 하시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해방을 선포하셨습니다.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축복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은 금식이 아닌 축제의 현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금식할 때가 있습니다. 함께 이사야 58:6-7을 읽겠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금식은 나의 경건과 나의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는 영혼을 위한 나의 적극적 간구와 행동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식인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정의와 사회 변혁을 외쳤지만, 진정한 구원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스승인 요한이 감옥에 갇힌 것을 비롯해 사회적 부조리에 탄식할 뿐이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전통과 율법에 근거한 금식을 하였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슬픈 기색을 보이며 금식하였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경건을 나타내기 위한 형식적 금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금식은 억압 받고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향해 구원이신 예수님을 알리는 것이며, 그들의 실제적 필요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헌신과 구체적 나눔이 있을 때에 증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진정한 금식을 하고 계신 것이죠. 모든 사람에게 지탄을 받던 세리의 집에서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을 잃은채 형식만 유지하는 것은 부패하고 썩기 마련입니다. 거룩한 습관이 아닌 무의미한 습관처럼 목적과 방향이 없는 습관은 에너지만 소비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새 시대를 알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복음의 소식을 전하고 계십니다. 병든 자가 낫고, 죄인들이 회개하고, 귀신이 떠나가고 원수의 궤계를 물리치는 권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할 메시아,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금식이 아닌 축제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마치 전쟁이 끝났는데도 보초를 서고 수색을 하는 군인들과 같은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이 해왔던 수고와 열심이 더이상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낡은 부대는 더 이상의 탄력이 없어, 새로운 포도주가 숙성이 되어 부피가 늘어나면 터지게 됩니다. 당연히 새 포도주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탄력이 유지되는 새 부대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낡은 형식들을 타파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요한의 제자들까지도 그들이 유지했던 형식들을 개혁하고 계십니다. 본질이 무엇인지, 진정한 금식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금식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금식이 목적을 잃으면 다이어트 또는 단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저 먹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경건함과 믿음을 증명하는 것은 자기 통제력과 결단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종교행위들을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고, 봉사활동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만족과 위안을 위한 것이라면, 과제를 하듯이 짐을 덜어내는 것이라면 오늘 말씀의 무의미한 금식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금식은 자신의 욕구와 소원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와 모든 사역은 오로지 나의 생각과 나의 어떠함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닌 오직 주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아름다운 뜻을 증거하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나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그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의 어떠한 행위에 의한 커트라인을 만족하기 위한 신앙생활이라면 다시 나의 믿음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나의 신앙생활이 목적과 방향이 없는 그저 형식만 있는 낡은 부대는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 이곳에 모여 예배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나의 재정과 시간을 들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만약 우리의 헌신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처럼 나의 의를 주장하며 누군가와 비교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손가락질 하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할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금식은 나같은 자를 살리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나같은 이들을 구원하실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주님의 시선이 있는 곳으로 나의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나의 시선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아프고 소외된 자들을 향하기 원합니다. 내 마음이 낡은 부대가 아닌 새 부대가 되기 원하오니, 내게 새 포도주를 부어주시옵소서.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주의 뜻을 알고 행하게 하소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