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성품으로 – 함께지어져가는교회 8월 24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5:5-6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제가 고등학생 때 하루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교회에 간 일이 있었는데, 저의 담당 선생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셔서 교회 올 때에는 이렇게 입고 오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에는 교회에 갈 때 특별한 복장이나 예법이 있지는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는 교회에 갈 때에 반드시 가장 정갈한 복장을 입고 가야 했습니다. 마치 명절날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뵙고 친척들을 만날 때 가장 좋은 옷을 입듯이 교회에 가면 하나님을 뵙는 것이니 예의를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꼭 정장은 아니더라도 슬리퍼나 반바지 차림으로는 교회에 갈 수가 없었고, 여러 사람의 눈초리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후로 교회에 반바지를 입거나. 슬리퍼를 신고 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저같은 어린 마음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고 가더라도 하나님께서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실 것 같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마음의 중심은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 말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팔복의 세번째 말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는 하나님의 약속에 땅에 들어갈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온유한’ 이라는 뜻은 절제된 힘, 하나님께 길들여진 마음으로 길들여진 야생마를 묘사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온유함’ 을 소유한 인물은 모세와 예수님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서 모세는 자신을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라고 말하고 있으며,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예수님은 모두 능력이 없거나 힘이 없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자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로서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살인을 저질러 광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는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부름 받아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할 때에는 온유함으로 리더십을 발휘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모든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시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였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려는 빌라도에게 당장이라도 하늘의 천군천사를 보낼 수 있다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 온유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품은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드러나게 됩니다. 강압이 아니라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되지만,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단호함을 지닌 태도입니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았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유익과 귄위를 위해 하나님 보다 사람들을 더 의식하였고 그는 결국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이며 그 나라에서 가장 권세 있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행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는 자들은 바로 겸손히 주 앞에 엎드려 주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하십니다. 마치 국가의 법을 알아야 공무원이 되듯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아는 자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자들의 성품은 네 번째 팔복의 말씀과 같습니다. 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성경에서 말하는 ‘의’ 는 나의 의로움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나 스스로는 결코 의로울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정결함이나 거룩함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내가 정결하고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닮아가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성품과 닮아가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공동생활을 하시며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삶으로 성품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능력 있는 자로 살기 위해선 반드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계속 주를 갈망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주를 갈망합니다. 주리고 목마릅니다. 주를 더 알고 싶습니다. 주와 더 교제하고 사랑하고 누리고 싶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허락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당장의 이익을 찾아, 또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순간적인 배부름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찾습니다. 쾌락적인 것들, 화려한 것들, 자극적인 것들을 찾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것들은 영원한 배고픔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는데, 하나는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영원히 채우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갈증을 느끼고 배고픔을 느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를 떠나 그 빈 공간에 무엇인가를 반드시 채워야 하는 것이죠. 끝없는 갈증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배부를 것임이요’ 는 사실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 포만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채워져야 하는 것인데, 그 배부름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35절에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배고픔을 채우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주님이십니다. 영원한 갈증을 채우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곳, 지속적인 공급함이 있는 곳, 넘치도록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자들의 성품은 바로 ‘나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품에 거하여 영원한 배부름에 거하기 원합니다’ 라고 선포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가지는 성품입니다. 사실 우리는 원하는 것이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고, 결국 또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의 본질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그들의 삶이 변하였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더욱 더 알아갈수록 주를 알게 됩니다. 왜 하나님을 갈급하게 될까요? 그 분께로 나아가면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온 천하 보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거하길 원하는 것이죠. 하나님과 영원한 사귐을 얻기 원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는 바로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시며,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 이심을 선포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땅을 얻을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지만, 모든 이가 거할 수는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기 위해서 시민권이 필요하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에 거할 수 있는 성품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나라에 거하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하십니다.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하나님의 땅에, 하나님의 나라에, 풍성한 삶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그 땅을 다스릴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해 넉넉히 차고도 넘치도록 부으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함께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무엇을 가르치시는지, 정녕 우리가 구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내가 가진 것을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기도합시다. 그리고 내가 나아갈 때마다 풍성히 채우시는 주님을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음성이 무엇인지 함께 듣고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