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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가기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가기 – 함께지어져가는교회 9월 21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제가 말한 음식에서 특이한 점을 찾아보십시오. 붕어 없는 붕어빵, 곰 없는 곰탕, 칼 없는 칼국수, 총각 없는 총각김치. 이 음식들은 이름 속 재료가 상징적·관습적·형용적 의미로만 남아 있어 실제 재료로는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어떻습니까? 소금 없는 소금빵. 이전과 다르게 소금 없는 소금빵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소금빵의 핵심은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소금빵에 소금이 빠지면 그것은 그냥 빵이죠.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소금세상인 것이죠 세상은 소금이 필요합니다. 소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예수님 당시에 소금은 단순히 음식의 간을 맞추는 조미료 그 이상이었습니다. 당시는 냉장고가 없던 시대이고, 보관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소금은 부패를 막는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지역에서 잡히는 물고기들도 소금을 절여 로마지역으로 유통하였습니다. 또한 소금은 로마 군인들에게 급여로 계산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화폐로서의 가치도 있었던 것이죠. “Salary”라는 영어 단어도 소금(sal)에서 나왔습니다. 또한 구약 성경에서 제사에는 소금을 반드시 더했습니다(레위기 2:13). 소금은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을 때, 그 말씀은 세상을 부패로부터 막아내고, 생명을 보존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팔복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복 있는 자가 누구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팔복의 복 있는 자로 사는 자가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 사람들을 살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고 말하나요. 맛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능력이 있고, 가진 것이 많아야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맛을 잃으면 사람들에게 밟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세상에서 버려진 존재로 밟힌다는 것입니다. 정말 능력 있는 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무미건조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맛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맛을 낼 수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세상이 말하는대로 살면 그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주를 찾고 애통하며 온유함으로 주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가 되며 이 땅을 향한 긍휼함과 사랑의 손길을 펴는 사람입니다. 또한 거룩함과 정결함을 유지하며 하나님과 세상의 갈라진 틈에 서서 화평과 평화를 외치며, 하나님을 위해 담대히 박해를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나에게 그런 삶이 없다면 맛을 잃은 것입니다. 맛을 잃으면 이 세상에서 어떠한 가치도 없이 그저 사람들에게 밟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정말 가치 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예수님의 길로 따르겠다고 하면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면 그것 보다 비참한 삶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삶이 되지 않도록 권면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가라고, 이 세상의 꼭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라고, 이 세상의 법칙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또한 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빛을 밝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어두울수록 빛은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빛의 부재가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4~5, 8:12, 12:46 의 말씀을 차례대로 읽겠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익숙한 자들은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세상은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로 인해 혼탁해지고 결국 죽음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소망으로 오셔서 그들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드러내지 않고 사역을 하려 하셨으나, 그 빛은 계속 전파되었습니다. 감출 수 없는 것이죠. 예수님의 말씀처럼 산 위의 동네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는 공동체입니다. 잘 드러나는 마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국 빛으로 드러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동시에 칭송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도 경이로운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빛을 두려워하면서도 따르고 싶어합니다. 그곳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빛을 등경 아래 두지 말고 온 사람을 비추는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빛은 감추기 위함이 아닌 밝히기 위함입니다. 어둠의 영역들을 걷히고 생명의 빛을 비추어 사람들이 옳은 길로 행하게 하기 위한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빛의 존재의 삶이 착한 행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1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헬라어 καλός (kalos)는 ‘착한’ 의 뜻은 도덕적으로 착하다, 선하다의 의미를 넘어 아름답다, 훌륭하다, 유익하다, 가치 있다 의 의미입니다. 착한 행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리게 만드는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말하는 바로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뜻으로 요한복음 10장 11절의 말씀에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라고 말씀하시는데, ‘선한’이 바로 καλός (kalos) 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이 마가복음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는데, 마가복음 9장 50절에 ‘소금은 좋으나 만일 그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라는 말씀에 좋으나가 καλός (kalos) 입니다. 단순한 행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죠.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존재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바로 소금이며 빛이 되는 것이죠. 소금과 빛은 존재만으로도 주변에 영향을 줍니다. 무미건조하고 어두운 곳에는 이 둘의 영향력은 자신에게 머물지 않고 주변으로 계속 전해지게 되는 것이죠. 등경 위에 불이 모든 곳을 밝히고, 산 위의 동네가 산 아래로 그 영향력이 전해지고, 적은 양의 소금이 음식의 맛을 결정하듯 예수님은 이 세상의 꼭 필요한 존재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흔히 우리가 기도할 때,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일주일간 더러워진 우리들의 모습을 회복하고 고쳐달라고 기도합니다. 지은 죄가 많으나 주일 예배 때에 나와서 거룩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물론 그런 날들이 있죠. 그럴 수 밖에 없는 시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소금과 빛이 되기 원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변하시키고 밝히는 존재로 살기 원합니다. 매일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져 밟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이 전해지게 하는 사람으로 살기 원합니다. 내가 산 위의 동네 처럼 드러나는 삶을 살겠습니다. 나의 가정과 교회가 그런 존재가 되겠습니다 라고 선포하는 존재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의 마지막을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만 존재가 드러나는 삶이 아닌, 이 세상 가운데에서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이 무엇일까요? 그런 존재로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함께 기도하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주님께 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믿음이 없이는’ 을 찬양하고 주님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를 하겠습니다.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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