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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0251221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저는 초등학교 때 조례와 종례 시간이 참 힘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출석부를 보시며 이름을 호명하셨는데, 많은 선생님들이 제 이름을 틀리게 불렀기 때문입니다. ‘19번 정순태’ 라고 불러야 하는데, ‘정순대’ 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한바탕 웃으며 저를 이제 ‘순태’ 로 부르지 않고 ‘순대’ 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순대를 좋아하는 것이나 순대를 닮은 것과 상관 없이 아이들은 저를 그냥 ‘순대’라고 불렀습니다. 학교 생활 내내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니 저는 순대 근처에는 가지도 않는 사람이 되었고, 제 이름을 지은 사람을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표현됩니다. 제 이름의 뜻은 순박할 순, 클 태 즉, 순박하게 성장하라는 이름입니다. 이름 때문인지 저는 이 세상을 순박하게 살아온 듯 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의 뜻은 어떻습니까? 이름이 여러분의 정체성이 되어 그렇게 살아오셨습니까? 성경에서도 역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 성품, 명예, 통치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14~15에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야훼 또는 여호와’ 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성경의 곳곳에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1의 엘로힘은 창조주 하나님, 창세기 33:20은 엘은 능력자, 시편 8:1의 아도나이는 통치하시는 분, 여호와 이레, 라파, 니시, 샬롬, 삼마, 로이 등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어떤 능력과 성품과 역사를 일으키시는지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이름이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나의 산성, 피난처, 요새, 성루, 반석, 방패, 힘과 노래 등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을 고백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며 고치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아름다움과 품위와 질서를 가지고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광대하시며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단어와 문장으로 결코 정의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고 그 이름을 의지하여 자녀된 권세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그 능력의 이름으로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생육하는 권세를 주신 것이죠.

그런데, 어찌 그 이름을 망령되이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망령되이 행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에스겔 36:20 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음행과 악한 행실로 인하여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고, 이방인들에게 모욕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삶인데, 하나님의 이름에 맞지 않는 삶을 살았을 때,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20:7 에서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고, 하나님을 말하지만 삶은 전혀 하나님과 무관한 상태이며, 종교적 언어로 자기만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만 내 뜻을 관철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그저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 아닙니다. 결코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이 낮아지거나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있는 자이시며 홀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주기도문의 시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나를 통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거룩한 것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삶과 행동과 언어가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자들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과 오늘 주기도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야할 방향을 열어 주신 가르침입니다.

물론, 주기도문의 고백처럼 나의 삶이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삶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히기 보다, 세상 가운데 위장한 채로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때가 있습니다. 뉴스에서나 각종 소문들에서 목사나 성도가 일반인들보다 못한 행위들로 사회적, 윤리적 질타를 받을 때도 있기에 그저 욕먹지 않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기도문의 시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말하며, 나의 삶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간구하는 선포입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위해 주님의 영광을 알리는 자로 살겠습니다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게도 이 기도문은 매우 어렵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겠노라고 말하지만, 아무 맛도 광채도 없는 삶을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욕만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성도로서의 본질적인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높은 기준이며, 고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삶은 노력 이전에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나를 추천한 사람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처럼,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진 빚을 갚는다는 목표가 아닌,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인 것입니다. 그 은혜에 겨워 노래하며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내 삶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얼마나 드러나는가? 나의 삶은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는 삶인가? 나로 인해 내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가? 나는 그 이름을 거룩히 여기고 있는가? 저는 이 질문들 앞에 무너졌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정순태 목사를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가?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나를 통해 여전히 아름답고 놀라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까? 우리 함께 기도하면서 나의 마음을 점검해 봅시다. 나의 삶을 점검해 봅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삶을 원하시는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실천이 무엇이 있는지 구하는 기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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