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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지나며-목천성결교회 청년헌신예배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태복음 4:1

할렐루야~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목천성결교회와 그리고 김성열 목사님과 매우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학생 때 수련회를 이곳에서 하여서 많은 은혜를 받았고, 이후에 헤리티지와 함께 했었던 어린이합창단도 하면서 이 은혜의 자리에 정말 많이 왔었는데, 다시 이 곳에서 말씀을 전한다고 하니, 정말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신실하심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저희 가정이 함께 왔습니다. 저희 가정은 지난 4월부터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섬기던 교회에서 사임을 했고, 저는 정말 바라고 바랬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4월 10일부터 24일까지 15일 동안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고, 성경의 인물들이 살았던 그 장소를 밟는 것이 제 꿈이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전쟁에 소식도 있고, 전쟁으로 인한 물가도 비싸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나이가 오십이 안 되었는데, 오십견이 와서 다녀올 수 있을까 정말 걱정했는데 너무 힘들었지만 만약 그 때에 제가 포기했다면 정말 평생 후회가 될 만큼 다녀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만약 이스라엘을 가게 된다면 어느 장소에 가보고 싶으신가요? 예루살렘 성전,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걸으셨던 거리, 요단강, 여리고성,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 등 성경에 나오는 모든 장소들 가운데 어느 곳에 가보고 싶으신가요? 저는 광야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광야, 세례 요한이 천국복음을 전파했던 광야, 예수님이 40일간 금식하며 보내셨던 광야. 너무 궁금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광야가 있나요?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곳 같은 이미지인데, 저는 성경을 읽으며 이 광야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사막 한 가운데를 말하는 것인지, 태양이 이글이글 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을 말하는 것인지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성경을 읽거나 나눔을 할 때 내 삶이 광야에 있다, 하나님이 나를 광야로 인도하신다 라고 했는데, 과연 광야는 어떤 곳일까요?

제가 이스라엘에 도착해서 교제하던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마침 제가 이스라엘에 방문했던 시기가 유월절 기간, 유대인들이 말하는 페싹 기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축제의 기간이죠. 전세계의 유대인들이 성전을 방문하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정말 여러 민족의 유대인들을 다 본듯 합니다. 선교사님과 함께 순례 여정을 짜는데,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목사님 어디를 가장 가고 싶으세요? 광야요. 광야에 가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광야에 가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제가 그 기간에 많은 곳을 다녔는데 항상 사람들로 붐볐는데, 광야는 정말 한적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한 번은 낮에, 한 번은 밤에 다녀왔는데, 정말 사람도 없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상상이 안되시죠? 그래서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3000미터의 가장 높은 산, 일 년 내내 눈이 있는 헐몬산도 있고,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요단강과 사해도 있습니다. 800미터의 고산 지대인 예루살렘이 있고,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해안 지역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야가 있고 광야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다양한 지형이 존재하는 이유는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예루살렘 지역의 고지대를 지나면서 비를 다 내리고 언덕을 넘어가며 건조해져서 사막이 생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막에 생물이 있습니다. 산양들과 붉은여우, 가젤,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종려나무, 선인장, 돌틈 나무 등 각가지 종류의 생물들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아주 황량한 사막은 아니었던 것이죠. 하지만, 낮에는 40도 이상의 온도가 올라가고 밤에는 5도 이하의 온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닙니다.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그곳은 여전히 광야입니다. 버려진 땅 같은 그곳, 광야는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말씀은 그 때에 라고 시작합니다. 그 때는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입니다. 요단강과 사해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겸손하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겸손의 왕 예수님이시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진한 사랑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음성입니다. 이제 러브스토리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뭐라고 하고 있나요?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이 말씀을 마가복음 1:12에서는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낮아지신 예수님에게 사랑의 메시지가 들리자마자 예수님의 자의가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내몰은 것입니다. 이유는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말씀 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에 정말 많은 곳이 있습니다. 지중해와 사해와 요단강과 갈릴리 바다, 예루살렘 또는 헐몬산 처럼 의미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광야로 데려가셨습니다. 왜 광야일까요? 제가 봤던 광야는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도 없고, 다채로움도 없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에 2월~3월 사이에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을 것이라고 합니다. 대략 일교차가 30~40도가 됩니다. 마가복음 1:13에서는 예수님이 들짐승과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환경에 노출되신 것이죠. 게다가 광야에 간 목적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다고 하니, 사탄의 음성과 유혹이 엄청났을 것 같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 적막함과 육신의 연약함들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화려한 데뷔를 한 것 같았으나 예상치 못한 경로이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자 하셨을까요? 왜 사탄의 시험을 받아야 했을까요? 그것도 왜 광야에서. 우리는 광야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40년간 방황했습니다. 엘리야는 호렙산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광야로 숨어 다녔습니다. 사도 바울도 회심 이후에 아라비아 광야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를 본다면 광야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있는 곳임을 알게 됩니다. 함께 예레미야 2:1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광야의 시간을 신혼의 때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을 나누는 시간인 것이죠.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 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다바르는 말씀입니다. 광야는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어떤 말씀이 있었을까요? 상상해 봅시다. 광야에 있는 예수님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계속해서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광야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저도 광야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하나님만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그저 나와 하나님과의 교제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두고 홀로 기도하러 가셨던 그 즐거움은 바로 이 광야에서 맛보았던 즐거움이 아니었겠습니까? 저는 지난 3월을 마지막으로 교회사역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앞으로의 어떤 행보가 정해져 있어서 마무리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제게 도전하라는 마음을 주셨고,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사역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러면 바로 사역의 문이 열리고, 좋은 소식들이 있어서 이곳에서 간증을 해야 맞는 것인데,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광야에 홀로 앉아서 하나님께 푸념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 어떻게 합니까? 저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닌가요? 저 오십견도 왔어요. 저 정말 이대로 멈추는 것 아닌가요? 제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자꾸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요. 광야에 있으니 제 자신이 솔직해 지더라고요. 누군가의 평가나 기준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오직 주님만 나만 있었습니다. 저는 참 다양한 공동체를 거쳐왔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역할들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지켜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죠. 때문에 저의 솔직한 고백과 잠잠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나누는 시간, 사랑의 시간이 적었던 것이죠. 하나님은 저를 사역자로 세우기 전에, 사랑하는 자로 초대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시기 위해. 잠잠히 저를 듣고 안으시기 위해. 스뱌나 3:17의 말씀처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은 제게 속삭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광야에 있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런 사랑 고백을 계속 듣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에게 둘러쌓이기 전에, 사람들 속에서 그 인기와 열망에 도취되기 전에 하나님과의 신혼 생활을 보내야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또한 광야는 시험의 장소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의 죽음 앞에 설교하면서 이스라엘의 광야의 시간을 광야교회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7:38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결함을 위해 거룩한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연단의 시간이 있었던 것이죠. 예수님도 사탄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 광야로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도 있었겠으나, 여전히 유혹하고 시험하고 정죄하는 사탄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물며 우리도 그 시험이 없겠습니까? 그 시험은 무엇입니까? 계산하는 것입니다. 효율을 따지는 것입니다. 광야는 비효율적인 곳이죠. 모든 것이 없으니까요. 사탄은 계속 말했을 거예요. 뭘 금식을 해 그냥 너의 능력으로 떡 만들어 먹어. 뭘 어렵게 메시야가 되려 해. 고통 없이 그저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너를 받을 거야. 얼마나 스토리가 좋아. 성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금방 소문 날텐데. 그냥 나한테 절해. 눈 한 번 딱 감으면 40일 금식, 3년 사역 그냥 패스야. 십자가 그런 거 없어도 돼. 사탄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우리를 위협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모습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비효율적인 광야에서, 계산이 서지 않는 광야로 예수님을 인도하셨으나, 사탄은 도심으로, 화려한 곳으로 인도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광야교회에서 치러야할 시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무너집니다. 이러한 광야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금새 변질되고 넘어집니다. 광야가 없이는 그 누구도 정금같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가장 큰 실패는 준비되지 않고 성공하는 것이다. 광야는 준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그리고 내 안의 정욕과의 싸움을. 제가 김성열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제가 다 알 수는 없으나 목사님은 다른 길을 택하지 않고 광야의 시간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도전을 받았고, 그러한 길을 가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분이신 것을 알았죠. 그런데, 쉽지 않은 길입니다. 선구자가 있으니, 그리고 제가 이 교회에 현장에 왔으니 더욱 더 힘을 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지난주 가정예배를 드리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우리가 광야에 있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고 선포했습니다. 두렵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슬프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확신합니다. 오히려 들을 수 있고, 주만 의지하고, 내 안의 적나라한 정욕과 유혹들을 직시할 수 있는 시간임을.

사랑하는 목천성결교회 청년 여러분에게 광야의 시간이 있었나요? 언제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진실한 사랑을 나누고 내 안의 연약함을 점검하는 시간이 있었습니까? 만일 성령님이 여러분을 광야로 인도하신다면 기꺼이 그 자리로 나아가시겠습니까? 광야는 하나님과 나만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나를 바라볼 수 없게 합니다. 모든 매체와 언론과 뉴스는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보게 합니다. 여러분은 광야를 지나고 계십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여러분의 자아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하나님의 사람을 살아가려는 정체성은 현재 어떤 모습입니까? 오늘 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척박한 곳, 광야일지라도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제가 그곳 바로 광야에 있기 원합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기도하는 시간, 그리고 내 삶이 그 광야의 삶이 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광야의 시간이 시작되는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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