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가라
19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태복음 2:19-23
어릴 때 억울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침에 제가 어머니에게 혼나면서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기억이 없는데, 어머니는 제게 혼을 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깨웠는데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물론 어머니는 저를 깨우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겠지만,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많이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어린 아이들은 아침잠이 많은 것이죠. 어머니는 저를 깨워야 했습니다. 학교가야 하니까요. 밥먹고 가야하니까요. 저의 보호자이자 저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니까요. 저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씻고 밥을 먹고 짐을 챙겨 학교에 갔습니다.
헤롯은 이스라엘에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 근방의 2살 아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습니다. 대학살이 일어난 것이죠. 하나님은 요셉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들을 애굽으로 피하게 하였습니다. 학자들은 이 기간이 1~2년이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갓난아기일 때인 것이죠. 오늘 본문 19절의 말씀은 헤롯이 죽었다고 나옵니다. 헤롯은 BC 4년에 죽었습니다. 사실 AD 와 BC 를 나누는 기준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정해지는 것인데, 역사학자가 실수로 예수님의 탄생년도를 잘 못 계산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탄생은 BC 4~6 년경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오늘 나오는 헤롯이 BC 4년에 죽었기 때문이죠. 헤롯이 죽고 하나님이 요셉의 꿈에 나타나셔서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아기를 찾던 자들이 다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님과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22절의 말씀처럼 요셉은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의 임금이 된 것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헤롯 만큼 아켈라오는 포악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헤롯 대왕은 이스라엘의 지역을 4개로 나눈 뒤, 3명의 자녀들에게 각각 땅을 나눠줬습니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지역은 아켈라오가 다스렸기에 그는 그 지역을 피하기 원했고,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는 갈릴리 지역으로 피하게 됩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이 꿈에 지시하신 명령이죠. 아켈레오는 실제로 AD 6 년 폭정으로 인하여 로마로부터 파면을 당하고 빌라도가 총독으로 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요셉에게 꿈속에서 현몽하셔서 갈릴리 지역으로 가도록 하십니다. 함께 23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런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었을 나타냅니다. 마태복음 예언의 성취를 많이 증거합니다. 이 책은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죠. 이 말씀은 이사야 11:1의 말씀입니다. 함께 이사야 11:1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새의 줄기가 누구죠?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의 계보에서 나신 이,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죠. 그곳에서 한 싹이 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싹의 히브리어는 네쩨르 입니다. 가지, 싹이라는 뜻이죠. 나사렛의 뜻도 가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표현이 어색할 수 있으나, 유대인들은 나사렛을 이름 없는 작은 동네로 무시했지만, 마태의 증언을 듣는 이들은 나사렛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증언으로 이미 선포된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출생부터 성장까지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언약 아래서 이루어진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모든 언약을 성취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 하나 놓치지 않으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따르는 요셉은 불안하고 두렵지만, 하나님은 때마다 피할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대로 머물거나 두려워하는 요셉과 그의 가족을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며 인도하시는 것이죠. 물론 요셉은 이 여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온 세월들을 돌아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던 것이죠.
최근에 저와 사모님은 우리가 만약 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가 제주도에 있었더라면, 우리가 미국 비자가 나왔더라면, 우리가 어느 곳에 있었더라면 이라는 이야기를 하죠. 물론 그곳에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때론 틀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때론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후회와 연민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선택에도 포기하지 않으시죠. 우리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일어나 가라. 일어나 가라. 일어나 가라. 때가 되었다. 이동하고 움직여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이동시키십니다.
지난주 아브라함의 이야기도 기억나시죠? 아브라함 또한 잘못된 선택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셔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인도하시죠. 하나님은 포기하려하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늘의 별을 보이시고 그 별을 보라고 합니다. 일어나라는 것이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지내던 모세를 깨우십니다. 불타는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로 부르시고 네 신을 벗고 나아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깨우십니다. 하나님은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은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은 뉘우침이 있었습니다. 제가 건강과 상황을 핑계로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특별히 기도와 묵상의 시간이 적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자주 깨우시는데, 저는 민감하지 못했죠. 하나님은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순태야 일어나! 순태야 일어나! 가라! 하나님은 일하러 가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쉬라고 하십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 품의 안전하고 거룩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바로 그분이 내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최근 어떤 상황 가운데 계십니까? 혹시 두려움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건 아닌가요? 아니면 지금 일상에 젖어 있어서 다른 움직임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명과 뜻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제자리에 계신 것은 아닙니까? 요셉에게 임하셔서 일어나 가라고 하신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끄십니다. 일어나 가라고 하십니다. 그곳이 어디이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생명의 길인 줄로 믿습니다. 자녀인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함께 소원을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