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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성품으로 II

하나님 나라의 성품으로 II – 함께지어져가는교회 9월 7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5:7-8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갤럽에서 나온 책 중 강점에 기반한 리더십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매우 흥미롭게 읽은 책인데,  2005년 미국 성인 10,000 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한 팔로워들이 리더에게 원하는 영향력을 네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그 네 가지는 신뢰, 긍휼, 안정성, 희망 이었습니다. 2025년에도 52개국 30,000명을  대상으로 동일한 조사를 하였는데, 그 값은 같았습니다. 저는 신뢰와 안정성, 희망은 당연히 리더십 안에 들어가야 한다라고 생각했지만, 긍휼이 그 가운데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팔로워들이 원하는 리더십의 모습 중에는 긍휼과 자비와 배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의 경우를 보더라도 나의 리더가 나를 향한 관심과 사랑을 멈추지 않기를 바랬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7절의 말씀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긍휼이란 단어의 뜻은 자비로운,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 많은 이라는 뜻으로, 단순히 감정적으로 ‘불쌍하다’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의 고통을 보고 행동으로 도와주려는 마음을 포함합니다. 히브리어 구약 배경에서 헤세드(hesed), 인애의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34:6 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시내산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시 선포하십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하심이 바로 헤세드이며 긍휼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들을 사랑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인내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택이며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흠없고 정결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하여서 긍휼하심을 베푸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입니다. 팔복은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복된 자들에게 있어야 할 것들을 말하고 계십니다. 그 중에 다섯번째 복 있는 사람은 바로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긍휼히 여기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죄와 연약함으로 넘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까지 붙잡으시고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9:36 과 14:14, 15:32 에서는 예수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나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먹이시고 고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심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그리고 그 성품은 그저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밖으로 향하여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자들에는 갈급함이 있습니다. 오직 갈급함을 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그 거룩한 사역을 믿는 자들에게도 맡기셨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것을 주장하지 않고 서로 통용하고 나누며 먹이고 교제하며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살필 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자 나의 필요도 채워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 또한 예루살렘 교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연보를 모아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로마서 15:27 입니다.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능력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것을 너희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옳으니, 이는 너희도 그들에게 영적 빚을 졌음이라’ 하나님 나라의 성품은 바로 서로의 필요를 살피고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랑이 내 안에 머물지 않고 흘러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이 가능합니다. 7절의 말씀이 가능하기 위해 8절의 말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함께 8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세도 아브라함도 엘리야도 그 누구도 하나님을 정확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과 손과 발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곳이 어디인지, 향하고 계신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이며 나만 바라보는 자는 주를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라는 뜻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순전하고 진정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과 혼합되지 않고 오직 주만 바라보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가질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내게 주신 사랑을 표현하고 전하고 흘러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마음이 청결할 수 있을까요? 먼저 거룩함과 청결함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은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임하십니다. 내 안의 더러움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정리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내 중심적인 사고로부터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로 바뀌어가야 합니다. 내 안에 나는 없고 오직 주가 살아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기가 하나님이 되어야 하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른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님의 시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품이 흘러가는 것이죠.

우리는 결코 나 스스로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게 이익이 되어야 사랑하고 베푼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대가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아들을 내어주신, 그리하여 우리를 살리신,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신 놀라운 사랑입니다. 우리에게는 긍휼함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묵상하고 나에게 베푸신 그 사랑을 감격하며 감사할 때에야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상태를 청결한 상태, 성령이 거하시는 상태,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받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선포되고 또한 사랑과 긍휼이 선포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듯이, 나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누군가 지옥을 사랑이 없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매우 동의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고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지옥에 사는 것일 겁니다. 하나님이 그러하셨듯이, 예수님으 그러하셨듯이 사랑하십시오.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해 보십시오. 내 능력이 아닙니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이 거하시시도록 죄를 고백하고 주님을 초청하십시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내 가정에, 내 공동체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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