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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열심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마태복음 1:1-17

우리나라 지폐 중 가장 고액권에 있는 초상화의 주인공은 신사임당입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죠. 본래 후보가 동의보감의 허준, 독립운동가 김구, 안중근, 여성 독립운동가 유관순, 조선 실학자 정약용, 조선 과학자이자 발명가 장영실 등이 5만원 지폐의 후보였습니다. 사실 누가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은데, 신사임당이 주인공이 된 이유는 남녀평등의 인식도 있겠지만, 훌륭한 어머니이자 교육가, 예술가로서 손색이 없는 인물이기에 그녀가 5만원 지폐의 주인공이 되었죠. 지폐는 모든 이들이 사용하는 화폐이기에 모든 이가 인정할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인식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신사임당이 주는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시대는 여성 지도자와 여성 리더 또는 인플루언서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1세기에서 여성은 매우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1세기라고 하면 삼국시대가 막 태동할 때입니다. 당시 여성은 출산을 위한 존재였으며, 남성의 부산물로 여겨지던 시대였습니다. 물론 모계사회가 이루어지던 시대도 있었지만, 전쟁과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남성 중심의 시대가 되었죠. 이것은 전세계 모든 지역의 공통점입니다.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한 일이었고, 헬라 문화의 로마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발달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세 부류에게 정치적, 사회적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외국인, 여성, 어린이 였습니다. 군사적, 노동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 시대의 독자들에게 오늘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여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라고 정통성을 알리는 족보인데, 14대를 세 번으로 나누어 다윗의 후손임을 전하는 족보인데, 왜 여성이 등장하느냐는 것이죠. 더욱이 등장하는 여인들이 놀라운 성과를 내거나 놀라운 업적을 일으키거나 존경받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성이 등장하는 구절을 함께 찾아봅시다. 자, 처음으로 3절입니다. 다말에게서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창세기 38장에서는 유다가 세 아들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았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엘과 오난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에는 후손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엘의 아내였던 다말이 셀라의 아내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렸기에 그리고 유다는 다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녀를 고향으로 보내버렸습니다. 다말은 기회를 엿보다가 유다를 속여서 아들을 낳았는데 바로 그가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것입니다.

만약 제가 마태라면 이 부분을 삭제하고 싶었을텐데 왜 넣었을까요? 지우고 싶은 역사인데, 왜 그랬을까요? 두번째 여인으로 가봅시다. 5절의 말씀입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라고 나와있는데 라합은 여호수아 2장에 의하면 여리고성에 정탐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여리고성에서 숙박업을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을 전해주었겠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진짜 이스라엘 사람을 만나니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래서 실제로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침공할 때 살아남은 유일한 여인이며 그녀의 가족들이 되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정탐꾼이 바로 살몬이라고 합니다. 라합은 가나안 여인이지만 하나님을 믿었기에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게 되었죠. 그러나 당시 이방 여인은 천대를 받던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죄악으로 가득찬 가나안 여인이었고, 그녀의 직업은 창녀였습니다.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합니다. 왜 등장할까요? 지우고 싶은 역사일텐데.

그리고 세번째 등장하는 여인은 같은 5절에 등장하는 룻입니다. 그녀는 모압 여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사람들을 혐오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과부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방여인으로 이스라엘에 와서 이삭을 줍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삶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결혼도 정상적인 결혼이 아닙니다. 보아스는 나이가 많았고, 룻은 이방 여인에 과부였으니까요. 그리고 그의 자녀는 나오미의 자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통해 다윗의 계보, 예수님의 계보를 이어 가십니다. 사실 논란이 될만한 여지가 많은데 굳이 왜 족보에 넣었을까요?

네 번째가 정말 어려운 구절이죠. 6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다윗이 누구에게서 솔로몬을 낳았죠. 우리야의 아내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범죄죠. 죄악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라는 여인을 강탈하고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자손이 바로 예수님의 계보를 잇는 자입니다. 실제로 역대상은 이 사건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이 족보에 이 여인을 소개하였습니다. 다윗이 참 중요한 사람인데,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인데, 다윗의 흑역사까지도 소개하고 있는 것이죠. 이 정도 되면 이 족보는 존경할만한 족보가 아니라, 더럽고 추한 족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등장하는 모든 여인이 다 부족함과 연약함이 있잖아요. 어쩌면 이 족보를 가지고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니다. 이런 곳에서 무슨 메시야가 태어나냐고. 아니면 좀 편집을 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할 이유가 있을가요?

또한 마지막 등장하는 여인은 마리아입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리아는 결혼하기 전에 임신한 여인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하는 여인입니다. 불륜을 저질렀으니까요. 물론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는 이들에게는 놀라운 기적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과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표적이 되죠. 하지만 마태는 이 모든 것들을 기록했습니다. 마태가 여성을 좋아해서 그런건가요? 마태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역사에도 이방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역사에도 죄인과 스캔들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방해와 사단의 전술에도 말씀을 성취하시며 메시야로 오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역사, 예수님의 계보, 예수님의 정체성은 모든 열방을 품으시는 분이라는 것이죠.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족속과 방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임을. 그리고 연약한 자들과 죄인들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오셨듯이, 그 분 또한 연약한 자들과 죄인들을 향해 나아가실 것이라고. 실제로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방인들과 구원의 자격이 없는 자들을 위해 사역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여성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완전하신 예수님이 바로 그러한 존재들을 통해 오신 분이신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제 가족들 중에는 한 명도 목회자가 없습니다. 아버지 가족에서도 어머니 가족에서도. 때로는 저의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자격이 없는 것 같고, 능력이 없는 것 같고, 도저히 나아갈 방향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를 지지하는 자들도 없고, 우리 공동체와 꿈과 사명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고, 우리의 공동체가 과연 어느 곳으로 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이 저에게 주는 은혜는 예수님도 끊어질 듯, 멈춰질 듯한 그러한 역사의 한 줄기 속에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죄악과 오류 속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제 삶은 오류 투성이입니다. 오히려 오류가 아닌 것을 찾기가 힘들죠. 요즘 저는 오류에 많이 부딪힙니다. 실수들이 드러납니다. 연약함이 보여집니다. 도저히 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환경과 배경 속에서 오셨다는 것이 제게 너무 은혜가 됩니다. 왠지 예수님은 제 상황과 마음을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나같은 사람도 되나? 나같은 출신도 되나? 나같은 성품과 성정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나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되네요. 됩니다. 예수님도 그런 환경 속에서, 오류와 죄악과 어두움 속에서도 이 땅에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나온 여인들과 같은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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