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내일

진정한 내일

20260222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진정한 내일

마태복음 6:25-34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갤럽의 34가지 강점 중 미래의 삶에 관해 밀접한 테마가 두 가지 있습니다. 심사숙고와 미래지향 테마입니다. 두 테마 모두 더 좋은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의 노력을 하는 강점들입니다. 심사숙고 테마는 인생은 지뢰밭이라 생각하여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를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많고 안전한 미래를 위해 오늘의 결정을 하는 심사숙고인 것입니다. 이 테마는 결정이 느리고 많은 변화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래지향 테마는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밝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삶의 도전을 선택하는 강점입니다. 이 테마는 오늘을 살기 위해서는 확실한 미래를 그려야 합니다. 밝은 미래를 꿈꾸기 위한 오늘의 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래가 정해지지 않으면 오늘의 열정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두 테마 모두 미래를 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오늘을 결정하는 강점입니다. 따라서 두 테마 모두 미래가 불확실할 때에는 오늘의 삶이 불분명해지는 것이 결과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미래를 위해 준비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27절의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의 말씀으로 우리의 한계를 알리고 계십니다. 키는 헬라어의 의미로 신체적인 키를 말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수명, 즉 인생의 길이를 뜻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더 자라고 더 오래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불가능의 영역임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공중을 나는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으지도 않지만 여전히 지저귀며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또한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솔로몬의 의복보다 아름답게 입히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합니다. 소위 ‘먹자고 하는 일인데’ 라고 말하며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잘 먹는 것이 행복과 안정의 표본인 것처럼 말합니다. 무엇을 입는가는 결국 내가 이룬 업적과 나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미래의 좋은 의복을 입기 위해 오늘을 견디고 사는 것이죠.

사람들은 저마다의 성공을 향해 달려갑니다. 여전히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진열된 책은 성공과 계발에 관한 책들이고, 대중매체의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담과 노력들을 말하며 현재의 자신의 업적과 이룬 것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자들은 패배자가 될 것처럼 살아갑니다. 성공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셔야 성공한 인생입니까?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학교를 다니고 어떤 직장을 다녀야 성공입니까? 드라마 제목에서부터 우리가 느끼는 일반적인 성공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은 스스로 자부할 만한 위치입니다. 그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성공한 자들이 누리는 표본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김부장은 죽도록 고생해서 미래를 준비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실패했을 때,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도대체 믿음이 무엇이길래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32절에 이런 바람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은 유대인 외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또는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은 결국 고민과 염려에 대한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체성과 신분이 다른 것이죠.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와 신분에 따라 고민이 달라집니다. 다른 미래를 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같은 민족이지만 북한에 살았다면 고민과 염려의 기준이 달라지겠죠. 우리가 같은 민족이지만 다리 하나 건넌 지역과 다른 생각과 다른 생활을 살 때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고민은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로 귀결이 됩니다.

예수님은 결국 우리에게 ‘너희가 어디에 있느냐?’ 로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어디에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론적 질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입는 고민은 하나님 나라의 고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런 고민이 우선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함께 33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이 세상의 법칙과 가치관을 따른다면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내 삶의 법칙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결국 나의 고민과 염려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가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 모든 것이 더하여지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따르던 수많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그들을 먹였다가 아니라 가르쳤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문제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순종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염려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근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일을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성공과 평안을 구하는 노력만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어야 합니다. 함께 고린도후서 7장 10~11절을 읽겠습니다. 우리의 근심은 내가 지금 하나님 나라 안에 속해있는지를 살피고, 경계를 벗어난 것은 아닌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염려하고 근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고 염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내일은 내 일만 해서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근시안적인 나의 성공과 안위를 위한 노력과 염려와 근심은 일시적인 보상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영원한 주관자이시며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심사숙고는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여 나의 삶을 점검하는 것이며, 우리의 미래지향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내일은 하나님 앞에 머물러 하나님의 품 안에 머문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최근 저의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의욕이 없었습니다. 좋은 시절 다 지나가고 남은 세월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남은 시간들이 짧다고 생각하니 기대보다는 부담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은 영원을 사는 사람인 것을 다시 고백하게 됩니다. 영원을 사는 사람이라면 오늘도 해야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가 아닌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오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나는 하나님의 문 두드림에 반응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는가? 나의 하나님을 전하는 복음의 열정이 내게 있는가? 내일의 염려가 오늘의 두근거림으로 바뀌기 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현재 어떠신가요? 어떤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계신가요? 오늘의 만나를 먹으며, 내일도 내릴 만나를 기대하고 살고 계십니까?

함께 기도하면서 오늘의 나를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고민과 염려는 무엇입니까? 진정한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 해야할 염려는 무엇이겠습니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ags:

Leave a Reply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