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판하는가

왜 비판하는가

20260308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왜 비판하는가

마태복음 7:1-5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오늘 성경의 예수님의 말씀은 비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자신도 비판을 받게 되고 헤아림으로 자신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비판하는 걸까요?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판으로 얻는 것이 무엇이기에 비판을 하는 것일까요? 비판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책임을 피하려는 마음, 자신을 의롭게 보이기 위해, 불안을 감추기 위해서 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면서 비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비판하는 이유는 책임을 피하려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책임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동산 중앙의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순종을 아시고 아담에게 책임을 물으셨는데, 아담은 당신이 주신 여자가 준 열매를 먹었다고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창세기 3장 12절을 읽겠습니다. 여자를 탓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탓하는 것이죠.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른 이를 지목하고 그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와는 말합니다. 창세기 3장 13절을 읽겠습니다. 자신도 뱀에게 속아 열매를 먹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직면하지 않고 다른 이를 지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죄를 짓고 나타난 하나님을 떠난 모습인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의 가장 근본적인 본질은 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흔히 마녀 사냥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개인 또는 공동체의 잘못과 문제를 누군가의 문제로 덮어 씌었습니다. 누군가가 받아야할 죄값을 한 사람을 지목해 그를 대리 희생하게 한 것이죠. 이런 마녀 사냥은 그 시대의 모습이기보다 인류의 본질적인 죄의 문제입니다. 사회, 정치, 경제, 종교 모든 분야에서 ‘내 탓이오’ 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네 탓이오’를 말하며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결국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결국 누군가를 비판하며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인류의 죄를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너희들이 잘못했으니 마땅히 처벌을 받아라가 아닌, 비난과 정죄가 아닌 긍휼과 사랑으로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죄값을 치루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책임지지도 않아도 되는 일을 책임지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책임을 지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비난과 모욕과 박해를 받으시며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오히려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값을 다 감당하신 것입니다.

둘째, 비판하는 이유는 자신을 의롭게 보이기 위함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면서도 시기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본래 그들은 말씀을 가르치고 삶으로 구별된 삶을 사람들로 인정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고, 의로움을 지키고 나타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들보다 더 의롭고 영향력 있는 예수님으로 인해 저들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열심으로 살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무엇을 하는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는지, 누구와 어울리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서 사람들 앞에서 도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비판한 것이죠. 번번히 그들의 모략은 실패하였지만, 저들의 악한 동기는 더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고 싶어합니다. 높임 받는 가치와 기준이 하나님 앞에 서 있다면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다른 이를 낮추고 자신이 높아지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 누가 더 높은지에 대해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낮은 자가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의 서열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라고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남의 티를 크게 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저 세리와 창녀와는 내가 다르다라는 선언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고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고백하는 세리와 창녀가 더 하나님 나라에 가깝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심판자와 재판관이 되고 싶어합니다. 기준이 올바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자신의 소견과 경험에 의해 다른 이를 평가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겐 관대한 반면 다른 이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 때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말하는 정의와 공의는 형평성과 공정성을 잃어가게 되고 만민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나, 현실에서는 만 명이 법 앞에서 평등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심판자가 될 수 없습니다. 대중매체나 SNS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논쟁과 비평과 비난은 대부분 누군가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그 누구도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밝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높아진 자들은 낮아지고 낮아진 자들이 높임을 받는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 비판하는 이유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불안은 평안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견딜 능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워지게 되면 본능적으로 세 가지 행동을 합니다. 분류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을 속히 정리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죠. 누군가의 잘못으로 정리해야 내가 그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불안한지, 왜 두려운지에 대한 원인을 찾아야 했는데, 그것이 명확해 진 것입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평안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안정적이고 평안할 때는 굳이 다른 이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불만족 때문에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한 원인을 찾아내고 싶은 것이죠. 그래야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찾고 싶은 명제는 ‘나는 괜찮아. 나 때문이 아니야. 그 사람 때문이었어.’ 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서 숨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두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더이상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낀 것이죠. 하나님이 성경에서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명령은 ‘두려워하지 말라’ 입니다. 모든 두려움을 내쫓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인 것이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평안함을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두려움과 불안이 아닌 평안과 기쁨의 나라입니다. 다른 이들을 비판할 이유가 없고, 하나님 앞에 나의 연약함을 내어놓고 자신의 아픔까지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고백하는 한없는 주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비판하는 것은 결국 나의 죄와 연약함 때문입니다. 나를 직면하고 나를 인정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 누구도 완전히 의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움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와 허물을 덮으시고 우리를 용납하셨습니다. 그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덮으셨습니다. 때문에 다른 이를 비판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은 주님 앞에 나의 모습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는 것입니다. 나를 비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간음한 여인을 모든 사람이 비난하고 비판하였지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려도 오직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내 마음을 꾹 누르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나를 비판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나를 용납하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품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비판이 아닌 격려와 지지와 사랑을 통해 세워진 나라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 나라에 거하며 주님의 자녀로 살아갈 것을 선포하며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이 시간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누군가를 비판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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