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30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사랑을 위한 공간
마태복음 6:1-4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제가 아내에게 주로 핀잔 듣는 일이 있습니다. 청소나 설거지 등의 집안일을 하고 나서 아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생색을 내는 일입니다. ‘뭐 달라진 거 없어?’, ‘깨끗하지?’ 등의 굳이 말하지 않아도 금방 알게 될 것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물론 집안일을 하며 아내가 즐거워할 것을 기대하며 정성을 들였기에 보상 받을 날을 기다린 것이지만, 아내는 밀린 채무를 받아내려는 듯이 요청하는 제가 못마땅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왔을 때, 기대하지 못한 선물을 받듯이 정리정돈되고 처리된 일들이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고마워하고 칭찬할텐데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수고로움과 의로움을 나타내려 했던 저의 모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집안일을 함께 나누어서 한 일은 잘한 일이지만, 그것을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 마냥 나타내려 하는 것은 하지 않은 것보다 낫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절에 외식하는 자들이 어떤 모습인지 말씀하십니다. 외식이라고 쓰인 단어는 헬라어로 ὑποκριτής(휘포크리테스), 영어로는 hypocrisy 라는 뜻입니다. 위선이라는 뜻이죠. 연기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이셨습니다. 당시에 목수는 석공과도 같은 일을 하였는데, 아마도 집 뿐만 아니라 극장을 꾸미는 일들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배우들을 보았을테고, 그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겉과 속이 다른 자들이 무엇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내면은 악하고 욕심이 가득한데, 경건한 척 연기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1절의 말씀을 보면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였습니다. 진정한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선행과 올바름인데 외식하는 자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사람이 많은 회당이나 거리에서 보여주기 식의 선행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원한 것이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려 한 것이니,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은 것이죠. 그러나 이 말씀은 무서운 것입니다. 저들에게 하늘의 상급, 하나님의 보상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일을 하였다 하더라도 저들의 마음에 진정함과 진솔함이 없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 곧,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저들의 동기가 악함 뿐임을 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절의 말씀으로 인해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수 없죠.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선행이나 구제가 나조차도 모를 정도로 하라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무심인 것이죠.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구제와 선행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그저 누구도 모르게 나조차도 모르게, 하나님만 아시는 구제를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19장 17절의 말씀은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은 곧 하나님께 빌려주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만 아셔서 하나님께 빌려주는 구제가 있을까요? 대표적인 예는 이방여인 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이방여인으로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고 시어머니를 봉양해야 하는 매우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이방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레위기 19장 9~10절에 나와 있는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아 가난한 한 이에게 남겨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의 구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죠. 또한 밭 모퉁이는 추수하지 않고 남겨두라고 말씀하셔서 언제든지 궁핍한 자들이 먹을 수 있는 배려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밀밭을 지나다가 이삭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빌려주는 구제를 의미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것을 쟁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구제는 내 삶과 재산의 영역의 일부를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어놓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하였지만 왼손이 모르는 것은 그것이 의식적인 행위가 아닌, 자연스럽고 일상화된 삶이 된 것이죠. 회당과 거리에서 여러 사람이 보이게 하는 구제는 삶의 일부가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더욱더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짜투리 시간도 활용하기 위해 철저한 시간을 관리하고, 밭 모퉁이의 이삭까지도 다 털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하나님께 빌려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죠. 구제는 내 삶의 일부를 주님께 내어놓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삶에서 다른 이를 위한 삶의 영역을 남겨두는 것입니다. 얼마 전, 목사님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자신에게 여유가 없고 인간적인 모습이 없어 고민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다정함은 여유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그분 말씀에 무릎을 쳤습니다. 맞습니다. 여유가 없는데, 다른 이를 돌볼 수가 없는 것이고, 자신의 삶도 유지하기가 빡빡한 것이죠.
구제는 내 삶의 일부분을 다른 이를 위해 내어주려는 주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모든 재산과 일정이 내 삶 중심으로 짜여져 있으면 다른 이를 위한 여유는 전혀 없게 됩니다. 마치 밭 모퉁이까지, 떨어진 이삭까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이들은 결국 구제도 나의 성공과 인정을 위한 나를 외식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구제는 나와 하나님만 아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돌려 받을 무엇인가를 기대하지 않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베푸신 은혜와 같은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갚을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주님이 먼저 나를 위해 그렇게 하셨기에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4장 7절에 나는 곧 떠나겠지만, 가난한 이는 너희 곁에 언제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구제는 바로 내 이웃을 예수님이라 여기며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며, 나의 배부름 보다 나의 삶을 나누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제입니다. 어찌보면 4절의 말씀은 너무 큰 은혜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 같아서 아무 결과도 없는 것 같다고 여길 수 있으나, 결국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행하는 것을 하나님도 은밀한 중에 보신다고 하십니다.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갚으시며 넘치도록 채우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히려 은밀한 구제에 더 많은 것으로 채우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당장 얻을 유익과 이익 보다 온 천하보다 크신 주님이 갚으실 것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청구하라’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불편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제 형편만 생각하며 구제를 받으려고만 했지, 구제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주변에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였나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빽빽히 채우는데, 과연 내 시간표 안에는 다른 이를 위한 여유로운 시간이 있어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위한 시간을 찾아보니, 제게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제 삶의 시간표를 보게 하셨습니다. 당장 연말에 제 계획을 보니, 제가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지가 보였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가요? 여러분의 시간표와 가계부 또는 예산에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여유로운 공간이 있나요? 특별히 인정 받지 않아도,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까? 진정한 구제를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 있나요?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행하시는 우리의 삶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긍휼하게 여기시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베푸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상주실 이를 찾고 계신 것이죠. 오늘 함께 기도하면서 나의 마음에 주님을 향한, 세상을 향한 사랑의 공간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해 달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