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요한 삶을 살기 위하여

부요한 삶을 살기 위하여

20260222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부요한 삶을 살기 위하여

마태복음 6:19-24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저는 걱정이 많은 편입니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일어날 법한 일들에 관해서 예상하고 대비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들이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괜한 고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도 있는 돈 마저 잃는 것은 아닌지, 과연 제주에서의 삶이 순탄하고 평안할지, 제주 생활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정말 많은 고민들을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것은 ‘그럴 시간에 더욱 더 그 때의 삶에 집중하고 누렸으면 좋았겠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제주에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 역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제주에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분명 지금도 많은 염려와 현실적 고통 속에 허우적 거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의 첫 문장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말씀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것은 저축의 중요성과 청년 시절을 지나면 제테크, 노후 준비 등에 대한 정보와 가르침을 접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젊을 때 바짝 일하고 충분히 벌어서 평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입니다. 가급적 빨리 돈을 벌어서 이상적인 투자와 구조를 만들어 일과 생계의 고민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집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저축하지 말고, 20절의 말씀처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십니다. 땅에 쌓인 보물은 좀과 동록 그리고 도둑으로 인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좀은 당시 옷감이나 천을 갉아먹는 좀벌레를 의미하고, 동록은 금식이 부식되어 생기는 녹을 말합니다. 당시 옷은 매우 귀하고 부가가치가 높았기 때문에 부의 상징이었고, 동전도 당시의 화폐였기 때문에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녹슬게 되고 도둑이 들어 도둑질 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죠. 하지만, 부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창고를 만들고, 경비를 세우고, 부를 늘리고 물려주기 위해 교육을 하고 제도를 만듭니다. 부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이제 부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하면 부할수록 행복할 것 같지만, 부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에서 한 사람과 한 부자를 통해 물질과 부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 한 사람이 찾아와 형의 유산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나는 재판장이 아니며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여 곳간을 더 늘리고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고 편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자고 햡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시며 오늘 밤 그의 영혼을 데려가시고 그 부자의 재산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둔 자는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결국 아무리 자신의 부를 쌓아 미래를 준비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21절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십니다. 내 보물이 곳간에 있으면 마음도 곳간에 있는 것이죠. 그러나 보물이 하늘 즉, 하나님 나라에 있다면 마음이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나의 보물을 많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부요한 자인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하늘에 쌓은 보물은 십일조나 구제와 봉사, 헌신, 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부요함의 결과죠. 하늘에 보물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자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부요한 아버지의 집에는 품꾼들도 풍요롭게 사는 것과 같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 있는 큰아들은 부요한 아버지와 함께 있어 열심히 일도 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했으나 부요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자신의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그 부요함을 누리지 못하고 결국 돌아온 동생으로 인한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보물을 몰랐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보물을 창고에 쌓아둘까요? 결국 평안한 삶을 누리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안함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오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끌고, 좋은 직장과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일시적입니다. 진정한 평안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거할 때 누리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내가 갖고 싶은 것들에 눈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 나라의 풍요함에 나의 시선을 두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하십니다. 결국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는 것이죠. 세상을 바라보고 성공과 부함만을 바라보는 것은 어둠입니다. 실패와 절망과 타락으로 향하는 어두움의 영역입니다. 결국 원하는 것을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너의 주인이 누구인지 결정하라고 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두 눈을 가지고 있지만, 두 눈의 시선은 한 방향입니다. 결코 두 눈으로 두 곳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재물을 쌓는 사람은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없고, 이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늘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제 삶도 그랬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역자의 삶을 선택했으나 불행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을 선택했으니 행복하고 부요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저의 시선은 주변 성공한 사람들과 맘껏 누리고 사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각종 티비나 미디어에 등장하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주눅이 들고, 저는 마치 무엇인가 빼앗긴 것같은 불쾌함과 자격지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이대로 살다가 거리로 내쫓기는 것은 아닌지, 왜 내겐 풍성한 후원과 지원이 없는지에 대해 염려하고 초조해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패한 삶일까요? 저는 결국 후회하는 삶을 사는 것일까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저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이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저는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의 소유를 함께 누리는 자였습니다. 아버지께 따로 유산을 요구하지 않아도 이미 아버지의 것이 내 것이 되었습니다. 제가 해야할 일은 단지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세월들을 돌아보니, 제가 부족한 것이 많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것을 누리지 못한 것이 행복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자격 없는 내가 이런 것을 누려도 되나 라고 생각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 나라에 거하면 되는 것인데, 저는 스스로 해내야 하고, 무언가를 나타내고 업적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세상에서의 보물이 없습니다. 부끄러울 정도로 작고 미약합니다. 그러나, 저는 부요합니다. 내 아버지가 부요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시선이 내게 없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내게 언제나 베푸시고 채우시는 주님께로 향하기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동거하고 동행하는 것이 바로 내게 부요함입니다. 내가 쌓은 보물입니다. 하나님과의 추억과 소중한 시간들이 바로 제게는 보물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나님과의 추억이 많네요. 저는 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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