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줄 수 있는가

누구에게 줄 수 있는가

20260315 함께지어져가는교회 설교

누구에게 줄 수 있는가

마태복음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초창기 멤버들을 식당에 모아놓고 영업 교육을 합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펜 한 자루를 꺼내며 동료들에게 차례로 건넵니다. 첫 번째 동료는 펜을 받아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펜은 정말 멋진 펜입니다. 그립감이 좋고, 잉크가 아주 부드럽게 나오죠. 디자인도 아주 세련되었습니다.” 조던은 바로 펜을 뺏어버립니다. 물건의 ‘스펙(특징)’만 늘어놓는 것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뜻이죠. 주인공이 이번에는 거친 매력을 가진 친구 브래드에게 펜을 건네며 말합니다. “나에게 이 펜을 팔아봐.” 브래드는 펜을 받아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메뉴판을 보며 무심하게 묻습니다. “저기 냅킨에 네 이름 좀 적어줄래?” 그러자 주인공이 답합니다. “펜이 없는데?” 그러자 브래드가 답변합니다. ”바로 그거야. 여기 펜 있어. (Supply and Demand, 수요와 공급이지!)”

배가 부른 사람에게 빵은 더이상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른 사람에게 다이어트 약품은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갖습니다. 자신의 생각에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것은 선물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주관적인 기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룩한 것과 값진 진주라고 할지라도 개나 돼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누가 주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받느냐 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놀라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따른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복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와 명예와 부가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며 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왜 가난한 자들일까요? 부자는 복음을 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복음은 몇몇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기쁜 소식일까요? 아닙니다.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가난하고 소외 받는 자들, 병든 자들, 귀신 들린 자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복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심판이 임박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않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런 심판의 메시지나, 구원의 메시지보다 현실에서의 부와 명예, 쾌락과 당장의 유익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개나 돼지는 당시 매우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개나 돼지라고 비유하십니다. 그들은 귀한 것을 알지 못하고 짓밟고 돌이켜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박해하였습니다.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에 갈급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타락한 사람들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의 태도가 바뀝니다. 본능적인 삶을 사는 것이죠.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이 귀하고 아름다운지, 거룩하고 정결한지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지식적으로 감별하는 능력이 아닌, 분별하여 순종함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하고 존귀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온 동네를 다니시며 거룩하고 값진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듣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하여 듣지 못하거나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결국 주를 떠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당시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이 사람들을 개나 돼지로 여겼을지 모르나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에게는 말씀을 선포하셨지만, 그들을 끝까지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저들은 들을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여러 고을로 귀신을 내어쫓는 능력을 주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너희를 영접하는 집은 계속 머물라고 하셨지만, 영접하지 아니하면 옷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과 관계 없음을 선언하고, 그들이 듣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죠.

결국 그들이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이 매력적이 아니거나 우리가 전하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온전하고 거룩하며 능력의 말씀이지만, 저들이 무지하고 악하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와 능력 가운데 살아가지만, 모든 이에게 허락한 복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사도 바울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변화될 것을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놀라운 능력으로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누군가가 구원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책임이지만, 복음을 전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묻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고 광고를 해도, 내게 필요할 때에야 귀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복음을 선포할 때에 왜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아무에게도 전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혜 없이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음 선포에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내게 주신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과 복음을 누구에게 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이 필요한 자들이 누구인지 주 앞에 엎드려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소식을 하찮고 필요없는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 아닌, 고통과 신음 속에 부르짖는 자들에게 능력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어떠한 분별함이 있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진리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그러나, 모든 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 있는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 동시에,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지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이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능력이 맞습니까? 개나 돼지는 그것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도 한때는 복음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눈이 열렸고 귀가 열렸습니다. 내 삶에 있어 주님의 복음이 거룩하고 진주처럼 진귀한 보물처럼 여겨진다면 주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경험하고 누리는 그 아름다운 복음을 누구에게 전할 수 있는지 주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시간 되시기 원합니다. 그리고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누구에게 줄 수 있는지 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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