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들에게 클리프턴스트렝스를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오늘날 갤럽이 말하는 강점의 특징을 떠올려 볼 수는 있습니다. 이번 글은 ‘강점 테마 존재감(Significance)’의 렌즈로 사도요한의 삶을 함께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존재감 테마는 단순히 ‘눈에 띄고 싶은 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와 일이 의미 있는 영향을 남기기를 원하는 강점입니다. 그래서 존재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일이 중요하게 여겨지기를 원하고,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영향력과 큰 목표, 오래 남을 결과에 이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존재감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내 삶에서 나의 흔적으로 남길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요한은 특별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의 중요한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경험했습니다. 변화산에도 있었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자리에도 있었으며, 겟세마네에서도 예수님과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그를 반복해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었고, 부활의 아침에도 베드로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요한에게는 처음부터 ‘존재감’의 아름다운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때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마가복음 10:37)
높은 자리에 앉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혀 다른 위대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가복음 10:43)
요한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에서 ’중요한 일을 위해 나의 존재를 드리고 싶다’ 의 삶이 된 것입니다.
존재감이 강한 사람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인정받고 싶은가입니다. 젊은 요한에게는 예수님의 영광 가운데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요한은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이 됩니다. 요한복음 마지막에서 그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것은 그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자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요한복음 21:24)
처음에는 “내가 어디에 앉을 것인가?” 를 생각했던 사람이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증언해야 하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존재감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존재감의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존재감에서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한 진정한 존재감으로 바뀐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존재를 통해 오래 남는 증언을 남겼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록했고, 편지를 통해 초대교회에 복음을 전했으며, 요한계시록에서는 자신이 본 환상을 증언했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은 그의 역할을 아주 간결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은 그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자라…” (요한복음 21:24)
요한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존재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말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일서 1:1)
그가 남긴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보았다. 나는 이것을 들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증언한다.”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증언이 된 것입니다. 존재감의 아름다운 모습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유명해지는가가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으로 무엇이 더 선명해지는가.
존재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삶이 그냥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 내가 여기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 안에 있는 중요한 동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존재감에게 필요한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기억할까?” 보다 “나를 통해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입니다. 요한은 결국 자신의 이름보다 예수님을 더 오래 남겼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증명하기보다, 자신이 보고 들은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래서 존재감은 이렇게 성숙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에서 중요한 일에 나의 삶이 쓰임 받기 원한다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때 존재감은 단순한 유명세가 아니라 영향력이 되고, 영향력은 흔적이 됩니다. 존재감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 아니라, 나를 통해 더 중요한 것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