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 가사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태복음 4:1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무사히 이스라엘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없는 2주 동안 말씀을 전해 주신 조미화 사모님께 감사드리고 기도해 주신 태상이와 태연이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스라엘에 가게 된다면 어디를 다녀오고 싶나요? 저는 광야를 가고 싶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에는 이스라엘의 광야가 없을 것 같았고, 정말 광야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광야에 대해서 말씀해 보세요. 제가 다녀온 광야의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예루살렘의 고도는 약 840~900m 입니다. 한라산의 높이가 약 2000m 입니다. 우리가 영실코스 갈 때 시작했던 곳의 고도가 얼마였죠? 지금 우리가 사는 만수동의 고도가 약 40m 입니다. 고도는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예요. 그런데, 예루살렘에서부터 사해까지 지역이 있는데 그곳을 웨스트 뱅크(서안지구)라고 불러요. 광야입니다. 왜 광야가 되었느냐? 사해의 높이가 -400m 입니다. 즉 비구름이 예루살렘 지역으로 올라가면서 비를 다 내리고(그래서 예루살렘 평아가 있는 거예요, 비옥한 곳이라 블레셋과의 싸움의 장소가 된 것이죠.) 건조한 바람이 내려가면서 광야가 된 겁니다. 즉,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 것이죠. 이스라엘의 넓이는 우리나라 경상도의 넓이인데, 모든 지형과 기후가 존재합니다. 헐몬산의 높이가 2800m 입니다. 1년 내내 눈이 있고, 지구에서 가장 낮은 사해 -400m 가 있고, 비옥한 평야가 있는가 하면 사막 지역이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지형들과 기후가 있는데, 왜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데리고 갔을까요?
오늘 본문의 시작이 어떻게 됩니까? ‘그 때에’ 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죠? 네 맞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난 후입니다. 세례는 누가 언제 받는 것이죠? 죄인된 우리가 죄의 모습은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의식입니다. 그래서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인가요? 아니죠.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서기 위함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이고, 예수님의 시작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의’ 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의’ 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지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에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고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순종이 무엇인가요? 나의 뜻이 아닌 나를 부르신 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죠. 나의 뜻과 부르시는 분의 뜻이 맞아 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끌리셨다는 것이죠. 예수님의 바램과 의도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움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다고 합니다. 광야에서의 40일을 상상해 보세요. 낮에는 너무 덥기에 동굴이나 그늘에 계셨을 것입니다. 밤에는 광야 한복판으로 나와 하나님과 교제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 시험 이후에 유월절을 맞이했다고 요한복음 2장에 나오기 때문에 아마도 예수님이 광야에 계셨을 때에는 1월 말이나 2월 중순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막 우기가 지나고 건기가 시작될 무렵이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로 가셨습니다. 아마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는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나오고 있고, 들짐승과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홀로 계셨던 것이죠.
왜 예수님은 홀로 계셔야만 했을까요? 세상의 목소리와 눈을 가리우는 것들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 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어로 다바르 입니다. 미의 뜻은 장소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 바로 광야인 것이죠. 하나님은 예수님과 교제하기 위해 말씀의 장소, 즉 광야로 부르신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 척박한 곳, 들짐승이 존재하는 곳이라 여겨지지만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큰 곳이죠. 아마 그곳에서 예수님은 앞으로 있어야할 모든 사역과 고난과 여정들을 위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전에 예수님께서 순종하여 세례를 받으실 때 들었던 음성을 아마 광야에서는 계속 듣지 않았을까요? 광야라고 하면 정말 아무 것도 없고, 어떤 은혜와 기쁨도 없을 것 같지만, 예수님은 낮에는 굴에서 밤에는 광야 한복판에서 하나님과의 찐한 사랑을 누렸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시간을 원하지 않으시나요?
하지만, 광야에 하나님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광야에 가신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있지만, 마귀의 음성도 있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고 믿음의 눈을 가리우게 하는 존재가 있는 것입니다. 유혹이 있는 것이죠. 마귀의 간계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무섭게 번개를 내리치고, 악마의 형상을 할 것 같지만 아니죠. 예수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가지라고 합니다. 태연이가 3절을 읽어볼까요? 배고프셨습니다. 금식하고 있으니까요. 예수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죽은 자도 살리고, 하늘의 천군 천사를 다스리시는 분이신데 하지 않으시죠. 다시 4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이 먹는 것에 있지 않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두번째 유혹이 무엇입니까? 태상이가 5~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성전 동쪽문 귀퉁이에서 뛰어내릴 때 천사들이 받드는 자가 메시야라는 전승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뭐 그렇게 어렵게 메시야가 되려하느냐? 쉬운 길을 선택해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7절을 읽어주세요. 스스로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목적은 바로 순종이니까요. 그리고 세번째 유혹입니다. 8~9절을 조미화 사모님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내게 순종해라 그러면 다 줄께 라고 하는 것이죠. 원하는 것을 바로 준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달콤한 유혹인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10절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십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광야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이죠.
제가 이스라엘에 다녀와서 느끼는 것은 우리 함께지어져가는 교회는 광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 우리의 바램, 쉬운 길, 합리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들을 내려놓고 철저히 외롭고 고된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죠. 나의 욕구들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바라는 것입니다. 광야에는 하나님만 계시지 않습니다. 본래 광야의 주인인 들짐승들도 있고 또한 마귀도 있죠. 따라서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주의 말씀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첫 관문이 필요합니다. 순종의 시간, 말씀의 시간 바로 광야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충만한 곳, 하지만 유혹과 핍박이 있는 곳. 그러나 그 길 뒤에는 영광과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곳. 바로 광야입니다. 우리 교회를 성령께서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이라면 우리가 함께 주의 말씀으로, 순종함으로 감당합시다. 그래서 오늘 2부 순서는 광야계획서를 쓸 예정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광야의 모습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할지 기도하고 정해 봅시다. 기도하겠습니다.